“짐 이게 마지막?”
“응응. 고마워 진짜아. 너밖에 없다.”
세연이 예의 그 맑은 웃음을 지었다. 인경은 세연의 말이 무척 세연다워서, 그의 결혼이 생경할 지경이었다. 세연은 여전한데, 또 달라지고 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달까.
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돈 아낀다고 포장이랑 운반 필요 없다고 한 내가 바보천치지. 자기가 하겠다던 남자 친구는 주말에 회사를 불려 나가질 않나, 이게 뭔 난리인가 싶었다니까? 근데! 이 모든 불운 가운데 인경이가 있었잖아. 나는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아. 맨날 주말 출근하던 정인경이 딱 오늘 쉬다니.
세연의 신난 조잘거림을 듣던 인경이 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이구. 그러니까. 그 귀한 쉬는 날에 네가 노동시키는 건 줄은 알고? 애는 착해, 애는. 인경은 세연이 참 안 늙겠다 싶었다.
“우리가 동네 친구가 된 게 아직도 신기해.”
“그러니깐.”
“청첩장만 먼저 줘서 미안해. 남자 친구도 소개해 줘야 지당하고 마땅한데 말이야… 이렇게까지 시간이 안 날 수 있어? 식장에서나 처음 보겠어.”
“괜찮아”
“….”
“뭐, 어떠냐.”
인경은 예의 그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세연은 미심쩍다는 듯 인경의 표정을 잠깐 관찰하다 진심이구나 싶어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식 끝나고, 신행 갔다 오고, 집들이는 인경이를 젤 먼저 부를게.”
“거참 고맙구나.”
“와아, 진짜 안 고마워 보여.”
세연의 큰 반응이 인경의 작은 반응과 대조되어 더 크게 느껴졌다. 세연의 흥분이 인경의 무덤덤함에 사그라들었다. 진짜라고오. 둘은 스무 살들같이 웃었다.
인경은 세연이 타고 간 이삿짐 차량 뒤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앞으로 영영 안 보진 않겠지만, 지금과는 또 달라지리라. 대학 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다른 것처럼. 그래도 만나면 만나는 대로 금방 우리다워지겠지. 우리다움이 뭔지는 말하긴 어려워도 말이야. 인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세연을 배웅하고 오른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으면서 인경은 당황했다.
세연이 그리운 게 아니라… 아무래도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지. 누군가는 가뿐히 걸음을 옮긴 자리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은 썩 달갑지 않다. 무겁다. 자리의 크기만큼 눌러앉아 버린 마음이 무겁다. 어디에도 옮겨붙을 수 없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마음이 무겁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린 눈물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결혼이 파투난 게 그렇게 대수였던가.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인 것을. 다만, 떠나리라 마음먹은 곳에 머무르는 일은 어렵다. 정리한 마음을 다시 풀어헤쳐야 하기에. 그런 일은 헤집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까지 헤집게 만든다. 모른 척 무시하던 현실이라든가, 합리화하던 처지라든가, 하는 것들.
인경이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채로 엘리베이터 실려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인경의 속도 모르고 움직였다.
대출 연장 알림, 임대차 계약 갱신 일자 안내, 원룸, 월세, 그런 것 따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어떤 시간들은 흘러갔다. 인경은 가만히 있는데 여러 것이 움직였고, 인경은 움직였는데 여러 것이 움직이지 않았다. 인경은 계속, 계속, 눈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