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마켓을 연다고. 공지를 본 세영 씨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냉소적인 입장이던 것이다.
이런 걸… 왜 하지? 이러면 뭐가 달라지는 것일까? 반드시 뭔가를 변화시키겠다는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런 행사도 여는 것일 터다. 물론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다만 하루여도 이웃끼리 얼굴이라도 마주 본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세영 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공동 주택의 비의(悲意) 같은 것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먼지다듬이가 나타나질 않나, 층과 층, 벽과 벽 사이는 또 얼마나 얇은지. 사람들은 자기만의 안위를 생각하느라 새벽에 청소기나 세탁기 돌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분리 배출일이 아닌 날에 분리수거장에 재활용품을 버리고 가기도 한다. 공용 공간에 강아지 배설물을 주의해달라는 안내 방송은 소음에 주의해달라는 안내 방송만큼 잦은 빈도로 송출되지만 누군가의 강아지는 늘 그 자리에 배변을 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치울 생각이 없다.
피해는 피해대로 있지만 누구 하나 해결할 사람은 없는 곳. 세영 씨가 생각하기에 공동 주택이란 그런 곳이었다. 각종 문제들이 방송 몇 번에 바뀌지 않듯이, 이 곳은 해사한 나눔 몇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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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다람쥐다. 수호 씨가 판매할 물건들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종종거리는 발소리에 열림 버튼을 누른 지 5초쯤 지났을까, 금세 발소리가 멈추고 들려온 감사합니다 소리에 고개를 든 수호 씨가 마주한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이었다. 자기 덩치보다 훨씬 큰 책상을 번쩍 들고 나타난 사람.
이번에도 그 사람은 자기 덩치보다 큰 일인용 소파를 들고 나타났다. 애초에 저게 저렇게 들리는 거였어?
"도와드려요?"
"네? 아뇨."
단호하기도 하시지. 로맨스 없어요! 없다니깐.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근수저한테 운동 팁 좀 얻고 싶은데. 다람쥐 씨는 꽤 확실한 편이었고 수호 씨는 아는 척 하려던 마음을 거두었다. 1층에 내린 둘은 지난번처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수호 씨는 그제야 다람쥐 씨도 오늘 플리마켓의 판매자라는 걸 깨달았다.
단지 중앙, 광장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넓은 공터에 책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주영 씨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다. 시작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판매 부스를 지정받은 입주민들은 10시까지 모이기로 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주영 씨는 조금 들떴다. 불안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어쩐지 고양되었다. 혹은 자기가 벌여서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양된 게 먼저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진정이 안 된다는 것! 후하후하, 어쨌든 ‘담당자’로서 의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긴장되었다.
"여기 앞에서 자리 확인하시고 물건 배치하시고 정리하시면 됩니다."
진 씨 뒤를 쫓아가는 꼴이 되어버린 수호 씨가 애써 민망함을 감추고 자리를 확인했다. 진 씨는 이미 제자리를 찾아간 뒤였다.
작가의 말
로맨스 없다니까요? 없...나?
베스트 댓글
ㄴ 두바이 나그네(ID)
플리마켓 구경가고 싶어요! 앙상블타워 주민들의 물건 중 가장 주목받을 핫템이 무엇일지 보고싶네요ㅎㅎ 그리고 어떤 공동의 목적을 이룰지…? 기대가 됩니다!
ㄴ 계양구 버스장(ID)
로맨스 따위는 없다는 말은 플리마켓을 계기로 무언가 생길 수도 있다는 암시?! 그나저나 다람쥐처럼 소파를 플리마켓에 내놓으려고 들고 가는 진 씨도 대단한데요?? 과연 플리마켓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