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도착한 지영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동안의 평화(?)에 잊고 있었는데, 지영이 일하는 곳은 “키친”. 바로 그 악명높은 잔악무도한 범죄자 소굴이었다. 지영은 출근하자마자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외근 소식에 깜짝놀랐다. 물론 언젠가는 자신도 진짜 '범죄'에 가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이 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다희는 도윤이 가게에 도착하면 그의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지영의 첫 정식 임무는, 조직의 정보를 흘린 배신자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시체를 처리한다니! 분명 같은 말인데, 말같지 않은 말이었다. 배신자의 시체라는 말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더욱 절망스러운 사실은, 시체처리도 시체처리지만 외근 동안에는 하루종일 도윤과 단둘이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도윤이 무섭거나 껄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면접 이후에는 상사와 부하, 그 이상으로 마주칠 일이 드물었고, 일하는 구역도 달랐기 때문에 오가며 대화할 일이 전혀 없었다. 즉 자신과 도윤은 어색한 사이 그 자체였다. 심지어 휴게 시간도 겹치지 않았기에 관계를 진전할 기회조차 없었고, 애초에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을 이 무서운 곳에 강제 취업시킨 사람이 아닌가.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까라면 까야지. 다행히 키친에는 아직 도윤의 모습은 보이진 않았고 덕분에 지영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괜찮아요, 지영씨. 물론 처음에는 조금 무서울 수 있긴 하지만…,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선배님도 외근 나가면 시체처리 업무를 하시나요?”
“저는 청부 살인을 하죠? 시체 처리는 막내의 일이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추억이네요.”
잊고 있었는데 다희도 엄연한 키친의 직원이었다. 그 말은 즉, 그녀 역시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킬러라는 것이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지영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자, 정우가 시비를 걸어왔다.
“기운 내세요. 후배님 덕분에 저는 오늘 혼자 주방 독박 쓰게 됐다고요.”
“…그것참 죄송하네요.”
“차라리 감사하세요. 그 정도면 편하게 일 배우는 거니까. 진짜 저택 소속들은 말입니다….”
“정우야.”
컵에 있던 먼지를 털던 성화가 정우를 제재했다. 정우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말을 잇진 않았다. 사실 지영은 뒷말이 궁금했지만, 성화가 제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여 괜히 더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이를 환기할 겸 지영이 운을 띄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다들 키친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신 거세요.”
헌데 질문의 선택이 단단히 잘못되었나보다. 사무실에 정적이 휩싸였다.
“아, 미안해요. 지영씨.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그나저나 이제서야 질문이 나온 것이 신기할 정도네요. 그렇죠?”
순간 휩쓴 무거운 정적을 깬 것은 성화였다.
“저택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으니, 한 가지만 충고를 드리도록 하죠. 저택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택 구성원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한편, 서로를 미친 듯이 증오하죠.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지만, 다른 뜻을 가지는 순간 그 사람을 죽여야 하니까요. 차마 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죠.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저택에서 살아가기 위해, 저택에 들어오기 이전의 과거를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 마디로 없는 셈 치는 거죠.”
“그래요. 그리고 저택에는 자발적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요. 그래서 그 질문은 저택의 금기라고 해야 할까. 암암리에 도는 약속이에요.”
“뭐, 그래도 알려드리자면 저는 시궁창에서 조금 더 나은 시궁창으로 들어온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순서대로 성화, 다희, 정우가 이야기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지영은 아무런 답 없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딱히 어떤 말을 할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으며, 긴장감에 몸이 쭈뼛 저려왔다. 지영은 어쩌면 키친 사람들에게 조금의 서운함과 함께, 그녀는 영원히 그들의 세계에 편입할 수 없음을 느낀 것 같았다. 나름 한 달간 같이 동고동락한 사이이지만, 키친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외부인으로 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지영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은 키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3개월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괜한 말을 꺼냈네요.”
때마침 도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왜 이래?”
“별일 아니에요. 차장님.”
다희가 분위기를 급히 분위기를 환기했다. 도윤은 그런 다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지영을 향해 고갯짓했다.
“뭐해요. 얼른 갑시다.”
지영이 허둥대며 바깥으로 나왔다. 키친의 앞에 검은 세단 하나가 정차해 있다. 지영은 눈치껏 조수석을 열어 앞자리에 올라탔고, 도윤은 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걸었다.
“현장에서는 코드 네임으로 부르세요. 그것이 규칙입니다.”
“…저기, 차, 차장, 아니 나이프.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왜 갑자기 또 의기소침해 있어요?”
도윤이 액셀을 밟으려다 멈추고 지영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냥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계약 기간도 2개월이 채 남지 않았는데 왜 굳이 이렇게 깊이 연관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날로 먹다가 퇴사하고 싶었다고요?“
“그건… 아니지만.“
도윤이 한숨을 쉬며 시동을 껐다.
“아까 사무실 분위기는 또 왜 그랬습니까.“
“…….”
갑작스레 눈물이 치솟았다. 말을 꺼내면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릴 것 같았다. 지영이 잠자코 있는데 도윤이 카시트에 몸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이야기 들어준다고 할 때 빨리 말해요. 계속 의기소침해 있는 것도 보기 안 좋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이곳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서요.”
“누가 그러덥니까?”
“아무도 그런 말씀 하시진 않으셨어요. 그냥 제가 그렇게 생각해서요. 눈치 없이 선배님들한테 저택에 왜 들어오셨냐고 물어봤거든요.”
“겨우 그것 때문에?”
“겨우라니요!”
“겨우죠. 별 시답잖은 이유니까. 별로 신경 쓰지 마세요. 저택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지영 씨보다 어이없게 연관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냥 다들 저택을 싫어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죠.”
“…그럼, 차장님은 어쩌다 저택에 들어오게 되셨는데요.”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