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키친의 홀을 담당하는 찹스틱, 이다희입니다. 오늘은 키친의 하루에 대해 소개해 볼게요. 키친의 정해진 출근 시간은 오후 5시. 느지막한 오후입니다. 다만 저는 미리 가게에 도착해 영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다가 퇴근하곤 해요.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저 홀로 이곳을 지키고 있지는 않아요. 키친에 도착하면 언제나 나이프, 성화 부장님이 바에서 컵을 닦고 계시거든요. 부장님의 취미는 컵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키친이 오픈되자마자 채워진 집기가 컵, 찻잔, 뭐 이런 것들이었을 지경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부장님은 언제나 수련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컵을 닦고 계신답니다. 언제 한 번 부장님이 수집하는 컵의 가격을 여쭤본 적이 있는데··· 저 컵을 깨트린다면 그대로 몇 개월은 굶고 다녀야 할지도 몰라요.
이제 출근했으니 할 일을 시작해야죠! 앞치마를 매고 홀 청소, 세팅을 마무리하니 벌써 4시 40분입니다. 저기 정우가 들어오네요. 스포크, 정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키친의 막내였는데, 지영 씨가 들어와 막내에서 탈출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자기가 막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좋아하기만 하더니, 요즘엔 자기도 짬밥이 찼다면서 지영 씨에게 제법 선배의 위엄을 보이려고 합니다. 지영 씨가 자신을 선배로 대할 때마다 내심 그것을 좋아하는데, 제 눈에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네요. 안타까운 사실은 지영 씨가 정우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우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요. 정우는 자신이 아직도 막내라는 진실을 과연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요?
4시 50분. 부지런한 아르바이트생 지영 씨가 들어옵니다. 지영 씨는 입사 초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타이밍에 들어와요. 그리고 요일마다 매번 다른 신발을 신고 나오는데, 음··· 오늘은 메리제인이니 화요일이네요. 스푼으로 변한 지영 씨가 유니폼을 입고 나오면 영업이 시작됩니다. 저는 지영 씨의 선임으로서 오늘 할 일을 브리핑하고 공유하는 일을 진행하죠. 그렇게 전달 사항을 말하고 있으면 포크, 도윤 차장님이 들어오십니다. 도윤 차장님은 언제나 지각을 일삼으시는 악독한 분이에요. 불성실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보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차장님이 키친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하는 분이기도 해요. 의외죠? 그러나 출장을 자주 나가시는 바람에 주방은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이랍니다. 정우야 파이팅!
도윤 차장님이 들어오자마자 가게를 환기시키라고 난리네요. 도윤 차장님은 먼지가 가득 쌓인 가게가 탐탁지 않은가 봅니다. 앗, 뭐죠? 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검은 것이 튀어나왔어요. 가게에 고양이가 들어왔는데요? 요 앞에서 자주 밥을 얻어먹고 했던 타이거예요! 도윤 차장님은 고양이를 기겁하시는데 큰일입니다! 어, 그런데 지금 타이거가 바 쪽으로 뛰고 있는 걸까요? 저기에는 성화 점장님이 닦아 놓으신 프랑스 직수입 빅토리아풍 신상 컵이 있는데!
쨍그랑-.
아아-. 타이거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소리에 놀란 부장님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차장님은 주방으로 도망치신 지 오래고요. 오늘도 바람 잘날 없는 키친의 하루가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