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이 뭔데 이래라저래라해요? 구재하? 잘 봐뒀어요.”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남들은 시키는 거 잘 따르고 정해진 일을 확실히 하며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재하 씨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재하 씨는 의아했다. 시키는 걸 따르면 밑도 끝도 없이 내 책임이 되고, 정해진 일을 확실히 하면 융통성 없다고 욕을 먹으며, 융통성 있게 행동하면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질책이 쏟아졌다.
“하여튼 돈을 더 내긴 왜 더 내라는 거야. 그냥 해주면 될걸.”
원래 돈 내는 거였다.
회사는 겉으로는-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공기관이지만 알고 보면 하청업체라 할 수 있었고, 민원을 받으면 상황에 따른 고려는 미뤄두고 민원이 들어 온 직원을 쳐내기에 바빴다. 민원들 가운데 어떤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자신이 몰랐다는 것을 굳이 집어내어 기분이 나빴다든지, 그게 비록 내 잘못이지만 모른 척 넘어가 주면 될 걸 굳이 집어내어 기분이 상했다든지. 결국 뭘 하든 민원을 받은 직원의 잘못이 되었고, 재하 씨는 몇 번씩‘ 그 ’직원이 되곤 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엄청난 사건 사고 없이도 삶의 큰 결정을 내리곤 한다. 재하 씨는 선배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와 영혼 없는 목소리를 마주한 어느 날 퇴사를 결심했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진짜 하고 싶었던 걸 해보려고 했는데, 하루만 아무것도 하지 말까, 또 하루만 아무것도 하지 말까, 무기력이 이어지다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재하 씨 마음을 잠식한 어둠은 생각보다 더 짙었던 것이다. 재하 씨는 점점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일단 잠에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묻어버렸던 기억들이 침대에 눕기만 하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떠올랐다. 겪은 일들을 순서대로 되짚다가 그날의 감정이 되살아나듯 느껴질 때면 눈을 감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차라리 불을 켜자. 이게 다 어두워서 그래. 이게 다 아침 햇살이 없어서 그래. 집안을 드리운 어둠과 재하 씨에게 드리운 어둠이 덕지덕지 엉겨 붙었다.
내일이 오는 게 싫어. 하지만 오늘이 가는 것도 싫어. 재하 씨의 밤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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