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는 7명의 주민 사이에서 가장 눈빛이 반짝거리는 사람이었다.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그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해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중에도 순수하고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 병을 쌓아가는 내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기운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집셋' 여정을 소개하며 레이지와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나의 '집셋' 이야기를 흥미로워 했다.
"30일 동안 덴마크에서 집은 어떻게 꾸몄어?"
집 꾸미기. 30일 동안 집은 누워서 고요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집을 꾸미기 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유튜브를 볼 수 있는, 더 예쁘게 영상 구도가 나오는 배치를 찾아 이리저리 가구를 움직여 보는 정도였다. 원래의 나는 편안함을 찾아가는 삶을 살았다. 인생을 뒤돌아 보건데, 새로운 신기술이 소개될 때마다,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소식들에 관심이 컸다. 집을 꾸미러 이케아를 방문할 때에도 가격과 기능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것을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는 편이었다.
"나는 하얀 백지와 같은 집에 색을 더해가는 걸 좋아해"
한번씩 예쁜 가구가 전시되어 있는 인테리어 쇼룸을 친구를 따라 갈때마다, 척척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내고, 구매까지 덥석 해버리는 취향들을 부러워했었다. 레이지는 7명의 주민으로 이뤄진 공동체를 반짝이는 색으로 채우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빠지면 모임이 무채색이 되어버리는, 그런 취향을 가지고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여러 색깔들을 보면 그냥 나오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다 고유한 본질이 있고,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색들이 더해져 그 색상만의 스토리가 담긴 색상이 나오잖아. 사연이 많아 보이는 색상을 지닌 소품을 모으고, 내 공간에 어우러지게 자리잡게 하는 과정이 즐겁더라고."
다음날 레이지는 나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다. 파레트에 물감이 가지런히 짜여진 듯한 선반, 그린 컬러로 포인트를 준 조명, 아늑한 분위기를 뿜는 색상의 소파... 갤러리 같지만 오래된 집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을 주는 공간이었다. 레이지는 색깔들을 더 빛나게 만들 수 있었다. 작은 것 하나 진심을 다해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누군가에는 존재 가치를 잃고 선택받지 못한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작은 존재들이 모인 새로운 무대 같은 제이미의 집은 인상 깊었다.
"만약에 너가 '집셋' 여정을 떠나게 된다면, 어떤 물건을 선택할 것 같아?"
뚜렷한 취향의 레이지의 3가지 아이템이 궁금했다.
"어떤 악세서리를 착용하게 되어도 잘 어울리는 새하얀 티셔츠와 운동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이비 핑크 가방!"
작가의 말
화이트 우드톤에 익숙해진 제가 컬러풀한 집을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죠🤔
베스트 댓글
ㄴ서교동붙박이(ID)
"여러 색깔들을 보면 그냥 나오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다 고유한 본질이 있고,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색들이 더해져 그 색상만의 스토리가 담긴 색상이 나오잖아."라는 문장이 참 와닿아요.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우리 개개인의 모습 같아요…!
ㄴ계양구 버스장(ID)
공간에 취향을 더해가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죠! 무색무취의 제이미도 언젠가 집꾸미기의 매력을 알게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