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저택에 무수리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말은 도우미지만 글쎄. 이곳에 들어선 순간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으므로 명칭 같은 건 중요치 않다. 저택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날에는 한산하던 로비가 북적였다. 사람의 애정 따윈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웃음소리란 어린 날의 누군가에겐 굉장히 소중한 것이어서, 유독 견디기 힘든 날에는 그날만을 고대하곤 했다. 저들은 이런 암울한 곳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그것이 항상 부러웠다. 그러나 북적이는 로비는 일주일 후면 텅 비었고, 가끔 마주치는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그저 어떤 고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이곳에서 동정은 사치이기 때문에.
도윤은 저택의 아이였다. 그가 저택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무렵. 부모님이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으며 실종 처리가 된 것이 발단이었다. 부모님의 연락이 끊긴 것은 귀국 예정일 바로 전날이었다. 매일 밤 오던 메일이 도착하지 않았다. 처음에 도윤은 부모님이 귀국 준비를 하느라 바빠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날, 모레, 그렇게 3일이 지나도 부모님은 소식이 없었다. 결국 도윤은 경찰서에 가서 상황을 알렸고, 잘 해결될 것이라는 그들의 말과는 반대로 부모님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동안 도윤은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결국 보호 시설로 옮겨졌다. 그렇게 부모님의 실종 기간이 5년이 지날 때까지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도윤의 생애 첫 불행이었다.
도윤은 처음으로 느끼는 거대한 상실에 잠식되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5년이 지난 후에는 포기를 알았다. 헛된 기대는 불안을 키울 뿐이다. 그저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하게도 그를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굴레 속으로 더욱 끌어들였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타 또래 대비 체격이 좋았다는 것? 도윤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 신경도 좋았고, 성장세도 남달랐다. 그런 형질이 남들이 이야기하는 보통의 가정에서는 좋았겠지만 문제는 그가 보호소에 있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보호 시설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방문했다. 그리고 간혹 보호소에 방문한 그들은 몇 시간 정도 도윤을 관찰하다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방문한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도윤을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다. 그렇게 세상이 전복됐다.
저택에는 그를 제외하고도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남자고 여자고 아이고 어른이고 저택에 발을 들인 순간, 나락을 걷게 된다는 것. 밝은 세상 아래에서도 그림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고통은 연쇄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것임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가 저택에 처음 온 순간 받은 교육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저택의 주의사항을 가르쳤다.
“가화만사성.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가 돌아갑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가족입니다. 여러분의 형제들을 잘 보살피고, 대부님을 위해 헌신하세요. 앞으로 그것이 여러분의 과업입니다.”
그 일반적이지 않은 교육 끄트머리는 배신자 처단으로 시작한다. 권총을 든 남성이 잔뜩 겁에 질린 사람을 끌고 들어온다. 온몸을 억압당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그 남자가, 단상 위에 도착하는 시간이 억 겹 같다. 그들이 온전히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거대한 총성이 들리며 시야가 붉게 물든다. 그것은 한낱 서류 따위보다 강한 결속이다. 범죄라는 공동의 집에 첫 발을 내딛는다. 공포는 강렬했다.
이후의 삶은 잘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저택의 여러 훈련들을 머릿속에 넣기 급급했다. 저택은 후대를 육성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항상 시험을 치렀고, 순위가 매겨졌다. 그리고 순위에 따라 부서가 배정되었고, 그것은 곧 자신의 상승이나 하락을 표현하는 지표가 된다. 이 이상 더 큰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모두가 아등거렸다.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그는 실력이 좋았고, 빠른 시일 내에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늘어가는 실력과는 반대로 그는 계속 죽어갔다. 감정의 말살. 그것이 교육의 문제였다. 도윤이 점차 웃음 짓는 법을 잊어버리던 찰나, 어느 날 난희를 만났다. 그녀는 저택의 별종이었다.
난희는 어른이었다. 제법 나이도 많았지만 그렇게 늙지는 않았지만, 고생을 많이 했는지 나이에 비해 얼굴이 낡아 보였다. 늙은 것이 아니다. 마모되어 낡아버린 얼굴을 가진 여자. 그것이 안 희였더. 그녀는 항상 성경을 들고 다녔는데, 그것은 그녀가 신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혹 예지몽을 꾸던 그녀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당에게 향해 방법을 찾았지만 별도리는 없었다. 그저 신을 믿으라는 말 밖엔. 하지만 난희는 신내림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성경을 펼쳤다. 기도의 주체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타인이 정해주는 길 따위는 걷지 않겠다며 성경을 달달 외우고 주말마다 교회를 나갔다. 그러나 그리 신실하진 않았으니 그녀가 진정으로 믿는 종교가 무엇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저택의 이단자였다.
난희는 그날 무수리로 저택에 입성했다. 그리고 교육을 받았다. 처형의 순간이 시작되면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데 난희만이 그곳에서 웃고 있었다. 어린 도윤에게는 그런 난희가 충격적이었다. 어딘가 다른 사람. 그래서 도윤은 한동안 난희를 쫓아다녔다. 난희는 그런 도윤을 귀찮아하면서도 가끔씩 어른 같은 말로 그를 위로하곤 했다. 그 위로도 그러한 문장 중 하나였다.
“도윤아, 너무 열심히 살지 마. 나에게 정 같은 것도 주지 말고. 때가 되면 그저 멀리 사라져 버려.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지.”
어떠한 어른들도 부모님이 돌아올 것이라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난희만은 자신이 부모님을 찾는 데 성공할 것임을 예언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윤의 운명이 저택의 부품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말을 들으니 도윤은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을 온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라 믿기 시작하자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난희와 저택 생활을 한 것은 2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동안 그녀는 마당이라는 소속 기관에 들어가 저택의 허드렛일을 하며 생게를 유지했고 도윤은 저택의 서재로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엘리트들만이 갈 수 있는 곳 서재에 입성한 그래도 자신이 쉽게 죽지는 않겠다고 안심했지만 난희는 어쩐지 슬픈 얼굴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난희는 자신을 동정했다. 도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부러 난희에게 친근하게 대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난희는 순간의 감정은 숨기고 도윤을 평소처럼 대했다. 도윤은 그런 사소한 친분이 난희와 자신을 이어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희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날은 새로운 무수리들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무수리가 들어오는 이벤트 같은 것은 이젠 식상했다. 어김없이 처형이 이루어졌고, 로비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행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고 도윤은 행사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서 난희가 뛰어온다. 난희는 말한다. 드디어 신병을 극복했다고. 그리고 내일이면 저택에서 도망칠 것이라고,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를 말리기를 포기한 것은 그 탓이었다. 무척이나 자유로운 그 얼굴이, 어떠한 근심 없이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기에. 자신은 지을 수 없는 표정을 그녀가 짓고 있었기에 망설였다.
난희는 결국 다음날 새벽, 저택을 탈출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단상에 올랐다. 그녀가 평온하게 무대를 오른다.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십자가를 손에 쥐고 성경을 달달 외우며 눈을 감는다. 빼빼 마른 몸이 갈대처럼 흔들리다 이윽고 추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