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겸 씨가 탄 엘리베이터가 2층에 멈췄다. 빨랫감이 잔뜩 든 바구니를 양손 가득 들고 탄 여자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를 여유가 없어 보였다. 버튼 앞에서 이리저리 헛도는 여자의 손가락을 외면한 채, 휘겸 씨는 핸드폰에 집중했다.
닮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정면으로 마주친 여자는 정인경 그 애와 닮았다. 휘겸 씨는 생각했다. 지방 소도시의 중학교 동창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특정한 건물에 살고 있을 확률은?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을 거다. 하지만 무척이나 닮았는걸. 하지만 알게 뭐람. 휘겸 씨는 직감적으로 그 애가 그 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그 직감을 지워내었다. 휘겸 씨는 이미 충분히 머리가 복잡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집의 계약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이라 2년 주기로 최대 8년까지 연장할 수 있었지만 벌써 4년째인 지금 어떤 결단이 필요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임시적인 상태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그때가 되면 내가 몇 살이더라, 결혼…해야 하지 않나.
휘겸 씨가 종종 살림을 합치자는 언급을 하고 여자 친구가 얼버무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신축 아파트나 신도시의 삼십몇 평짜리 집을 열망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모든 일이 성가셨다. 한쪽의 집으로 들어오자니 각자의 집은 너무 작았다. 자, 지금부터 준비 시작! 하자니 주 5일 무사히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람들 사이에 실려 가고 실려 오는 출퇴근의 지하철은 인간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여자 친구는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냥 서울에서 안 살면 되지 뭘 그러냐고, 고향에 내려가서 살면 그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곤 하는데, 휘겸 씨는 그럴 때마다 알겠지만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휘겸 씨는 이직을 할 때도 ‘선 퇴사 후 이직’형의 사람이기보다는 이직할 회사가 정해질 때까지 다니던 회사를 쭉 다니는 타입의 사람이고, 일단 해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각을 잴 수 있을 때까지 재보고 나서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으. 벌써 한 시야.”
재빠르게 퇴근하고 재빠르게 밥을 먹고 재빠르게 헬스장에 갔다가 재빠르게 씻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은 새벽 한 시. 휘겸 씨가 질린다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뱉었다.
침대에 누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시끄러워질 때쯤, 다시 내일의 나에게 오롯이 그 생각들을 떠넘길 때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앙상블 타워의 거의 모든 집들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휘겸 씨 시야엔 오로지 한 집만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 집은 늘 새벽에 불이 켜져 있어 눈에 잘 띄곤 했다. 뭘 하느라 항상 늦게 잘까, 휘겸 씨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거두었을 때 이미 시간은 세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