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첫 출근을 뒤로하고, 지영이 키친에 입사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다. 비록 강제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고, 청부살인이 적성에 맞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때도 있었으나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키친에 잘 적응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무려 그녀의 이름으로 살인 의뢰가 들어오는 수준이었다. 도윤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고 허허실실 웃으며 자랑스러워했고 팀원들도 그에게 직원 뽑는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칭찬했다. 잘한 것은 자신인데 칭찬은 도윤이 받는 것이 고까웠으나 그가 받는 칭찬이 곧 자신에 대한 칭찬이니 나름 뿌듯했다. 그렇게 살인에 두각을 보인 지영은 갓 입사한 신입답지 않게 고공행진하여 저택 내에서 최단 시간에 정직원이 되었다. 처음에 쌀쌀맞았던 팀원들도 이제는 그녀를 인정하고 어려운 임무도 점차 맡겼다. 심지어 월급도 빠르게 올라 정직원이 받는 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 목숨수당까지 추가되어 월급이 어지간한 대기업 연봉 못지않았다. 그렇다. 키친은 그녀를 위한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헉!”
지영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사수인 다희가 옆에서 걱정스럽게 지영을 바라보았다.
“일이 너무 고됐나 봐요 지영 씨. 너무 곤히 잠들고 있길래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였던 걸요. 이제 슬슬 교대하러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좀 새서 그런가 봐요.”
“괜찮아요, 루틴도 다 외웠고 오늘은 조금 익숙해졌는지 제법 손도 빨라졌던걸요.”
“그게요? 굼벵이도 그것보단 빠르겠네요. 아니, 굼벵이는 용감하기라도 하지. 지영 씨는 간이 콩알만 해서 굼벵이보다 겁을 먹나 봅니다.”
다희와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지러 온 정우가 앞치마를 벗으며 덧붙였다. 원래 시어머니 옆에서 바람 잡는 시누이가 더욱 얄미운 법이라고, 맞는 말이지만 상당히 분했다. 다행히 자신의 사수는 다희였기에 서빙 업무에 있어 서투른 일이나 실수가 있을 때 그녀가 융통성 있게 도와주었지만, 주방부는 아니었다. 키친에서 가장 성격이 나쁜 둘이 그곳에 붙어있으니 음식을 가지러 가야 하는 지영은 그때마다 타박을 들어야 했다. 물론 지영이 실수를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애초에 서빙 알바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갑자기 접객을 맡긴다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었다. 심지어 이건 일반 접객도 아니고 귀빈의 접객이지 않나! 지영은 억울했지만, 말대꾸를 할 용기는 없었다. 자신은 말단 중에 말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간이 콩알만 한 것도 맞고.
지난 한 달간 지영은 수습으로 일하며, 다희를 서포트하는 일을 중점으로 했다. 주로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밀 지령이 적힌 종이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와인을 따르거나 식기의 위치를 바꾸는 것과 같은 저택 내의 수신호와 관련된 일은 다희가 처리하고 자신은 잡무만 도맡아 함에도 그 사이에 참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가령 지령지를 잘못된 테이블에 올려 놓어 지시가 꼬인다던가, 음식이 잘못 서빙되어 잘못된 방법으로 임무가 수행된 것이 그러하다. 심지어 불법업체인 저택의 의뢰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뒷골목에서 한 몫 한다는 사람들 뿐이었고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을 접객해야하는 지영은 위축된 어깨로 음식을 조심스럽게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혹시 그 사람의 옷에 음식을 흘린다면 자신은 죽는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엎은 적은 없으나, 대신 속도가 느렸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덕분에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키친에 웨이팅이 생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키친의 업무 전달은 불법적인 일인 만큼 수속도 복잡했다. 사소한 잘못에도 지령이 바뀌기 일쑤였기에 그때마다 도윤과 석화가 직접 수습해야 했고 키친에는 그동안 악명이 쌓였다. 이번에 입사한 신입이 키친의 첩자라는 무서운 오명이 말이다. 이에 지금은 가벼운 지령 전달의 업무나 비교적 쉬운 접대만 도맡아 하는 것이 실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지영은 여전히 키친의 일이 고되기만 했다. 항상 긴장된 채로 일을 하는 지영의 일처리 속도가 느린 바람에 결국 다희의 일은 줄기는커녕 늘어났고 팀원들의 고충도 많아져만 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부서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니 신입이 충원됐다고 기뻐하던 팀원들도 지속되는 실수에 점점 표정이 싸늘해졌다. 지영은 결국 오늘도 시무룩하게 퇴근했다. 키친의 남은 팀원들은 가게에 남아 정리를 시작했다. 테이블을 닦던 정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도윤에게 따졌다.
“도움이 되는 사람을 데려온다면서요. 아직 접시를 안 깬 게 용할 정도로 일을 못하는 사람을 데려오면 어쩌자는 겁니까.”
“일은 우리 네 명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이것뿐이던가요. 이번 달에는 청부 살인 의뢰도 두 건이나 있어서 준비해 두려면 힘들단 말이에요.”
“아, 그 건 말인데, 지영 씨도 데려간다.”
“네? 어떤 거요. 그 배신자 처단 업무요?”
”응. 시체처리 담당으로 데려갈 거야.”
“차장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희가 기함하며 도윤을 불렀다.
“왜 그러지?”
“지영 씨를 현장에 데려갔다가는 기절하고 말걸요. 그냥 일 더 늘리지 말고 조용히 그만두게 내버려 두세요.”
“지영 씨는 제물이야. 어차피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니 괜히 신경 쓸 필요 없어.”
“…….”
굳은 표정으로 다희가 도윤을 쳐다보았다. 정우는 한숨을 쉬며 둘의 어색한 기류를 정리했다.
“굳이 정을 붙이지 말라는 말이네요.”
“그래, 굳이 따지자면 어차피 죽을 실험 쥐에게 정을 줄 필요는 없다는 거지.”
“정말 그 방법을 사용할 예정인가요?”
“모든 것은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
키친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이내 키친의 직원들은 각자의 할 일에 열중했다. 평화로운 키친의 어느 일상을 보내듯,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각자의 역할을 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