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한 거 맞겠지?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서 애꿎은 이마만 꾹꾹 누르고 있다. 인경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건지. 딱히 생길만한 오해도 없고 스스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오해를 살까 봐서 걱정이라니.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잠이 오질 않아 뒤적거린 클라우드에는 그 시절의 나와 인경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인경이를 담은 프레임에 내가 셀카 각도로 끼어 있는 사진들로, 대체적으로 인경이와 나의 관계가 그러했다. 인경이는 늘 무언가를 나와 상관없이 실행하는 편이었고 나는 그런 인경이를 쫓아가는 쪽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쫓았던 건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게 좋았으며, 인경이가 좋았다. 더 정확히는 인경이와 어울리는 게 좋았다.
그 시절 인경이는 내게 적극적으로 친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해지려는 나를 밀어낸 적은 없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오케이’였다. 누가 봐도 ‘거절’이라는 말을 얼굴에 써 붙여 놓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정작 뱉는 말은 ‘그래’였다. 그게 은근히 재밌어서 몇 번이나 그랬었는데, 적당한 선과 계획된 시간만 지켜주면 순순히 그러자꾸나 하며 나와 어울려주곤 했다.
“점심 떡볶이 먹자.”
“그래.”
“아, 그냥 추우니까 국밥?”
“…그래.”
가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긴 했었다만. 어쨌든 지금 내 걱정이 의미가 없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인경이라면 내가 그러자니 그러자고, 그랬다니 그랬겠구나 했을 것이다.
인경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의중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얼굴을 했으면서 가장 숨겨진 속내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넌 참 밝네. 나도 너처럼 부모님 덕으로 등록금 내고 다녔으면 공부 걱정하면서도 그렇게 긍정적일 텐데, 그치.”
동기들과 취업이나 성적이나 대외 활동 등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이런 식의 조소 섞인 비아냥을 듣곤 했다. 딴에는 공감한답시고 응원을 한 건데, 할 수 있다는 내 말이 그들의 귀에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뱉어내는 알량한 동정 따위로 들렸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자기 상황이 제일 중요하다지만 그들이 가진 자기 연민이 짙으면 짙을수록 내 진심은 결코 진심으로 닿지 않았다.
“뭐래, 넌 또 왜 그렇게 삐뚤어졌어. 너 위로해 준다고 한 말을.”
누군가가 비치는 얕은 속내를 인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곤 했다. 상대를 향한 감정이 빠지고 의아함만 남은 말투에 날카로운 말들이 곧장 무뎌졌다. 그렇게 말한 애들은 마치 이성적으로 돌아오는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자기가 너무 예민해졌다고 말이 심했다는 대답을 변명하듯 쏟아냈다.
인경은 왜곡된 의도 없이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아이의 올곧은 시선은 버거울 정도로 고마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세연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아닐걸요.”
“거기 부회장이 그렇게 들었다는데 뭐지?”
“…? 아닐걸요? 저 그때 같이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는 말 안 한 것 같아요.”
새로운 총학생회가 출범할 때마다 관습처럼 진행되는 학보사 인터뷰에서 오해가 생겼다. 당시 총학생회장이 당선된 후 학교 커뮤니티에는 “학생회장이 이전에 단과대 회장을 하면서 학생회비 사용하는 게 개꿀”이라고 했다는 카더라가 올라왔다. 우리는 사전에 학생회장에게 이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인터뷰 때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길 원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리는’ 담당이 바로 나였다.
어떻게 하면 “커뮤니티에 올라온 의혹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으니 입장을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가 오해를 일으키는 문장이 될 수 있었을까? 학생회 쪽은 내가 한 말을 꽤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의혹으로 당신의 자질이 우려되니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물었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 중간에 끼어서 누구 편을 들었다고 종종 오해를 샀다. 비슷한 일이 대학에서도 이어지자, 정말 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이 이렇게까지 잘못되는 건 내 탓이라고. 소통은 사회성이고 사회성은 사회적 지능이고 난 그게 단단히 모자란 사람이라고.
“야. 그게 무슨 네 잘못이야. 내 귀엔 너무 친절하게 얘기하는 걸로 밖에 안들렸구만. 너 똑바로 얘기했어.”
“….”
“근데 다음부턴 그런 거 말할 때는 웃지 말고 얘기해. 알았지. 못되게 말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웃지 말고 하란 소리야.”
그랬다.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감정적인 판단을 한다. 실제로 학생회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래서 그게 찔려서였는지 아니면 의혹 자체가 불편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는 감정적이었다. 내가 그 의혹과 관련된 언급을 했을 때, 말하자면 ‘발작 버튼’이 눌려 버린 것이다. 나는 좋게 말했고, 그는 나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경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임을 져야만 했다. 총학은 인터뷰를 거부했고 학보사가 인터뷰를 싣지 않아 생겨나는 또 다른 의혹과 이어질 진실 공방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실제로 어떻게 말을 했느냐와는 별개로 그렇게 전달된 것엔 내 잘못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활동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학보사를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어… 그게 문제였다. 시선들 그리고 나를 향한 모두의 손가락. 그걸 기억하는 건 나였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 외에 잘못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내가 학보사를 나갔고, 그뿐이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나만 사라졌고 흘러갔다. 제대로 된 대화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생략되고 쉬쉬하듯 묻어져 버린 사건 속에서, 나만이 그 날 선 감정들을 털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잊어지지 않아 응어리지고 응어리들이 뭉쳐 침전된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사람들도 감정들도 단체도 상황도 사건도 전부 응어리가 되어 남았다.
인경과 반년 정도 사소한 연락이 이어졌다. 그 아이는 여느 때처럼 아무 상관 없이 굴었지만 나는 상관 없지 않았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는 재능이 내겐 없었다. 인경은 전처럼 나를 대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인경은 나를 어렵게 만든 적이 없었는데 나는 인경이 어려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