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지영이 집에 오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번화가에 생긴 뜬금없이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식당, 거기에 수상할 정도로 높은 시급, 이상한 면접까지. 전단지를 보고 가게를 들어간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의 이상함이었지만 합격의 기쁨은 자꾸만 키친을 평범한 레스토랑이라고 합리화했다. 처음에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알고 보니 불법 업체의 이상한 공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들었지만, 내부는 완벽한 레스토랑이었다. 심지어 어떤 간 큰 사람이 사람들이 지나가는 한복판의 상가에 불법 업체 건물을 짓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영은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어째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주민등록등본이랑 신분증, 통장 사본 챙기고··· 혹시 보건증도 필요한가. 내일 발급받아야겠다. 그나저나 시급이 삼만 원이나 된다면 일이 굉장히 고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영을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은 포크가 남긴 마지막의 묘한 질문이었다. 시체를 잘 볼 수 있냐니. 지영은 평소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잘 보는 편이었으나 눈앞에서 시체를 마주한 적은 손에 꼽았다. 고작 조부모의 장례식에서 본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식의 시체를 말한 것은 아니겠지.”
포크가 말한 것은 분명 동물이나, 생선의 시체일 것이다. 분명 그래야 했다···. 지영은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안 와 결국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차려 먹고, 보건소를 들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웃다가도 이따 갈 아르바이트 생각에 불안감이 차올라와 유튜브로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브이로그를 보았다. 블로그 글도 찾아보며 마음의 각오까지 마친 지영은 곧 시간이 되어 서류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키친으로 향하는 지하철 내부는 한적했다. 평일의 지하철은 한가로웠다. 지영은 잠시 걱정은 잊고 창밖의 이지러지는 풍경에 집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강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니 오늘 하루도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려야 할 역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역에서 내리니 시간은 2시 반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했나. 지영이 조심스레 키친의 문을 여니 가게 안에는 이미 포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종이에 내용을 작성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영이 인기척을 내며 가게로 들어가자, 포크가 고개를 들어 지영의 용태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라 손짓했다. 지영이 포크의 앞으로 가자 포크가 방금까지 적고 있던 종이 한 장을 지영에게 건네었다. 근로계약서라고 쓰인 종이였다. 지영이 사인을 위해 가방 안에 있던 여분의 펜을 찾는데 포크가 자신이 들고 있던 펜을 내밀었다.
“이걸로 서명하시죠.”
지영은 포크에게 펜을 건네받고 종이를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근로계약서였고 최소 근무 기간은 3개월이었다. 독특한 점은 기밀누설금지 조항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키친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관해 근로자는 비밀 유지를 필수로 한다. 거창해 보이는 조건이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항이기도 했고, 레스토랑의 레시피 유출을 막는 조항인가 싶어 지영은 한 치의 의심 없이 서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영이 서명한 다음 포크가 종이에 서명을 하자마자 종이가 푸른 불꽃에 타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놀랍고도 이상한 일에 지영이 굳어 가만히 허공을 쳐다보자 포크가 손을 털더니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지영에게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저택’의 살인청부부 <키친> 소속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지영 씨는 이 시간부로 키친의 시체처리전담부 인턴 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영이 놀라 도윤을 쳐다보자, 그가 아무렇지 않게 지영의 손에 명함을 쥐어주었다. 지영이 멍하게 명함을 읽다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자 도윤이 지영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녀를 붙잡았다.
“도망치려고요?”
“저, 저는 이런 거라고 말씀 들었던 적 없어요. 이건 사기 계약이고 저는 여기서 근무 못 해요. 계속 붙잡고 있으면 신고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이 손 좀 놔주세요.”
“그렇군요.”
“······.”
“그런데 지영 씨.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왜 제가 저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저의 정체를 밝혔는지. “
”······. “
겁에 질린 지영이 포크를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지영 씨는 이곳에서 3개월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저주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 계약이거든요. 물론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도 똑같습니다. 지금은 믿으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곳에서 나간다면 후회하게 될 거예요. “
”······. “
”자신의 목숨으로 도박하긴 싫으시겠죠? “
아무래도 자신에게 액운이 낀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