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출장에서 돌아온 세연 씨는 책장 주변에서 움직이는 점들을 발견한다. 그렇다. 그것들은 점이 아니었다. 1504호의 진 씨가 집에서 발견했던 바로 그것. 먼지다듬이였다. 당장 세스코에 전화를 걸었지만 완전 박멸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세연 씨는 그래도 훈증 방역을 하기로 결심했다. 먼지다듬이가 집안을 정복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두고 있자니 심히 거슬리는 수준이긴 했기 때문이다.
방역을 위해서는 하루 정도 집을 비워야 했다. 근데 어디에서 자야 해? 호텔? 무슨 사치람. 친구 집? 아무리 그래도 결혼한 애들 집에 쳐들어가는 건 너무 민폐지. 아기도 있는데. 그냥 휴가를 쓰고 본가에 내려가? 아니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언제 또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와. 고작 하루를 머무를 곳이 없는가. 타지에서 세를 내고 살아가는 누구나 다 비슷한 처지일 테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아, 인생이여. 결국 홀로 남는 것이 인생이거늘. 아무래도 괜찮을 수밖에 없건만 아무래도 괜찮지 않았다.
마음 편히 지내려면 돈을 쓰더라도 호텔이 최선의 선택일 텐데 내키지 않았다. 이번 출장 경비를 회사에서 처리해 주긴 했어도 이래저래 평상시보다 돈이 많이 쓰인 게 사실이었다. 인간관계가 나쁜 것 같지도 않은데 막상 이럴 때 떠오르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니. 씁쓸한 기분을 무시한 채 카톡 친구목록을 뒤지는 세연 씨의 무의미한 손놀림이 이어졌다.
정인경. 세연 씨 눈이 멈춘 이름이다. 그런 날이 있다.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고, 세연 씨는 스스로를 말릴 생각도 잊고 진부하다는 그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 잘 지내?
악! 손가락을 분지를까. 차라리 얼굴 위로 핸드폰이 떨어지는 게 백 배 정도 낫다고 생각하며 세연 씨가 쌍욕을 되뇌었다. 급기야 세연 씨는 퇴근길 지하철에선 본 손절한 친구랑 여행 가기 유튜브가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곧,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답장이 왔다
- 응. 웬일?
“참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거 봐봐. 성격 참 똑같다 얘도.“
삐죽거렸던 말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세연 씨의 광대는 조금 들떠 있었다. 분명히 불편해야 하는데,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함이 걱정될 정도였다.
우리는 스무 살의 언젠가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친하지도 않고 아주 불편하지도 않은, 적절한 호의와 적절한 궁금증을 담은 사이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들. 어떠한 탐색의 시간이었다. 세연 씨는 예전보다 솔직했고 인경 씨는 예전보다 따뜻했다.
- 음. 금요일? 우리 집 될 듯.
세연 씨도 별생각 없이 말했으니 엄청난 감정의 동요까지 느끼진 않았으나 생각보다 흔쾌한 인경 씨의 태도에 그저 의아함을 느꼈다.
- 퇴근은 7시인데, 너네 집 어디야?
- 신의동 앙상블타워 1동 1537호로 오면 돼. 근데 신기하다. 여기도 먼지다듬이 때문에 방역하는 집 있던데.
대단한 우연이었다. 인생이란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거였다. 인경이가 앙상블타워에 살고 있다니, 나 어떻게 해? 말해야 돼? 말아야 돼? 그렇다. 세연 씨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그 방역하는 집이 자신이라는 걸 밝힐지, 말지. 하지만 밝히지 않으면 우연히 마주치거나 밝혀졌을 때 지금보다 더 어색해질 테니까, 고민이 의미 없을 정도로 답은 나와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이대로 둘까.
[901호 먼지다듬이 훈증 방역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연 씨는 그날 엘리베이터에 붙인 A4 한 장의 한 줄짜리 공지에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담겨버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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