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을 리셋하시겠습니까?!”
"결정과 동시에 집셋 버튼을 눌러주세요”
집셋? 새로운 집에서 60일간의 여정... 우리 집은 내가 죽도록 아끼는 곳이 아니다. 계속 들어가고 싶어 생각나는 곳도 아니다. 새로운 직업을 꿈꾸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내내 집은 잠깐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깨끗하게 치워도 금방 어지러워지는 방을 매번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크게 마음이 가지도, 그렇다고 쉽게 옮기지도 못하는 잠깐의 휴식 공간. 애착을 가지긴 힘들었다. 성공하면 좋은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만 몇십년 째. 좋은 집이 어떤 집일지 생각을 깊게 한 적이 없다. 그저 지금은 생방송에 늦지 않을 집. 갑자기 긴급 대타에 막히지 않게 바로 나갈 수 있는 회사와 가까운 곳이 나에겐 필요했다. 원하는 직업을 얻은 현재의 삶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내 집은 아직도 치열한 나를 받아주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리셋되어도 아쉬운 공간이 하나 없었다.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없었다. 새로운 곳, 더 나은 곳으로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해 왔지만, 익숙해진 일상의 시작점과 끝점이 버튼 한 번으로 옮겨지는 게 두려웠다. 이럴 땐 물어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휴대전화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답답해진 나는 휴대전화를 꺼버리고 이 묘상한 공간에서 얼른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집셋은 나의 흥미를 자극해 버렸다. 쉽게 끄지도, 그렇다고 선택도 잘되지 않는 상태. 답답했다. 불현듯 방송이 생각났다. 건조한 톤, 따뜻한 공감만 남은 나에게, 아니 내 방송에 특색 하나만 생기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건데 장소가 바뀐다고 크게, 많은 것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잠깐 환기는 필요한 때였기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희미하게 만들며 버튼을 눌렀다.
"집셋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셋 여정에 꼭 필요한 물건 3가지를 설정해 주세요."
버튼을 누르니 꿈쩍없던 휴대전화의 화면이 드디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내가 있던 235번 게이트 방의 색깔이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우리 집 내 방이 게이트 방 벽면을 둘러쌌다. 집셋 여정에 필요한 물건 3가지를 찾을 수 있게 지금의 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리셋되기 전 저장된다는 내 방, 마지막 모습은 아침의 분주한 준비를 마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영상으로 보아도 들어가서 눕고 쉬고 싶은 안락한 방은 아니었다. 집셋 한번 해보길 잘했다고 계속 합리화하는 마음을 더 굳건하게 해줬다.
가져갈 수 있는 물건 3가지. 바쁜 삶을 살아오며 취향이 없어졌다. 삶에서 중요해진 것은 내가 보고 느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책장 속 카메라, 스탠드에 걸려있는 마이크, 침대 위 노트북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든든해지는 조합이다. 휴대전화를 들어 선택을 전달했다. 화면이 넘어감과 동시에 게이트 옆 시큐리티 벨트에서 내 영혼의 단짝들이 차례로 내려왔다.
"제이미 님이 선택하신 게이트 235를 통과하면 집셋이 시작됩니다."
"60일간 직장 환경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제이미님은 '라디오 DJ'로 새로운 집과 국가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색다른 환경에서 시작해 보세요."
게이트 방을 걸어 나가니 비행장으로 이어졌다. 목적지를 모른 채 한참 비행기를 타고 산맥들을 넘어갔다. 승무원이 두꺼운 옷을 가져다주었다. 이륙 사인에 맞춰 단조로운 짐을 챙겼다.
겨울이 막 시작되려는, 덴마크에 내렸다.
더운 여름을 지나 건너온 나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한 듯 두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