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을 고집하는 부모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호 씨였다.
“어머니, 제가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고요. 손 없는 날에 이렇게 집착하시는 건 저를 못 믿으신다는 거죠?”
미신에 궤변으로 맞서 봤으나 실패였다. 수호 씨 엄마의 미간이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찌푸려졌다. 안 쓰던 존댓말에 이상한 말투. 수호 씨의 엄마는 꿍꿍이 있어 보이는 아들의 말이 그저 어이없을 뿐이었다.
수호 씨는 말없이 벽면의 달력을 넘겼다. 2024년 2월 29일. 그의 눈이 거기에 멈췄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저 혼자만 기억하겠거니, 수호 씨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약속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학기 정도는 휴학하고 돈을 벌어 두려고 했다.
이젠 소용없어진 계획이다. 모든 금전적 지원을 끊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니, 군대 가기 전 특별한 생각 없이 살아왔던 그에게는 알아서 할 자본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돈이라는 크나큰 주도권이 부모님께 있는 한, 이 독립은 반쪽짜리 독립인 것이다. 부모님 말씀에 따라야 하는 반쪽짜리 독립. 이사가 내일이다.
822호. 앙상블 타워에 익숙지 못한 수호 씨는 1동으로 바로 들어오는 입구를 몰라 2동으로 돌아 들어온 참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 박스들과 소가구들이 제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호 씨는 박스 속 오래된 탁상 달력을 꺼내 들었다. 2월을 표지로 삼은 2020년의 탁상 달력이었다. 2020년 2월 29일과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은 2024년의 2월 29일. 수호 씨는 그날의 약속을 생각했다. 혼자만 간직해 왔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진 않다. 선 채로 달력을 지분거리던 수호 씨의 손가락이 당근 앱으로 향했다.
“그… 당근이세요?”
“아! 네네. 맞아요. 여기 이거 책상이고요.”
자기 몸보다 큰 책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나왔다 이 여자. 수호 씨는 어쩐지 앞에 선 이 사람을 경외할 수밖에 없었다. 수호 씨는 신체적으로 허약하기를 타고나, 지금 그나마 허우대가 멀쩡해 보이는 것도 노력의 산물이었으니 대단해 보이는 게 당연했을지도.
“사진은 보셨죠? 이쪽이랑 이쪽에 얼룩이 있어요. 지금 확인 한 번 해보세요.”
수호 씨는 여자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딱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없어 곧 괜찮다고 말했다. 돈은 여기로 보내주시면 돼요. 수호 씨는 여자의 음성을 들으며 돈을 송금했다. 돌아서며 인사하는 여자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수호 씨가 책상을 들었다. 다람쥐? 뭔가 엄청 큰 설치류스러운 느낌… 무거워… 엄청난 책상과 엄청난 다람쥐……. 수호 씨가 눈을 껌뻑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