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저의 거주지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이전이었다면 ‘저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겠지만, 그곳은 현재 저의 거주지는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 질문을 한 사람에게 ‘제 마음이 내키기 전까지는 제주도민이 될 예정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화법에 어긋나는 대답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재는 제주도 서귀포시 주민입니다.”
그러자 대답을 들은 질문자, 그러니까 제주도의 한 한적한 카페를 운영 중인 넉살 좋은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제주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구나!’라며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굳이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 싶었던 저는 입꼬리를 올리며 온화한 낯빛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신이 난 아주머니는 제가 반응하지 않아도 제주살이에 도움이 될 법한 팁들을 제멋대로 늘여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별다른 호응 없이 맞장구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신공을 펼쳤죠. 그리고 제 앞에 놓여 있는 제주 유기농 녹차를 홀짝였습니다. 아, 물론 제주도 녹차라고 일반적인 녹차와 맛이 다를 것은 없지만 왠지 제주도라는 이름이 앞에 붙어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는 메뉴였지요. 불행하게도 대화는 제가 잔을 비울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자 일부로 숙소에서 꽤 거리가 있는 카페로 온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습니다. 카페 방문 외에 다른 행선지가 있던 것은 아니었어서 도로 주변의 풀꽃들을 구경하며 산책하다가 저는 저의 임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참고로 이 집에 들어온 지는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기실 제가 아주머니에게 애매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굳이 제주도에 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육지의 생활에 지쳐있었을 뿐인 한낱 물고기일 뿐이었죠. 그러니까 제가 이곳의 온 것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관성에 불과합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던 것이 아니지요. 300만 원 정도 되는 퇴직금을 받고, 지긋지긋한 곳에서의 생활을 6개월 연명하느니 차라리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런 각박한 세상에 퇴직금이라는 큰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된다며 훈수를 두겠지만 저는 딱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꿈꾸려면 닥쳐올 미래가 있어야 하는 데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기다리기엔 당시의 제가 생을 마감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육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제 일상을 극복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제주 한달살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떠날 장소까지 정하자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비행기티켓을 끊고 에어비앤비에 들어가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국내 숙박을 하는데 해외 수수료가 붙는 것이 슬펐으나 이 여정으로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다면 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몰랐으므로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로 올라오기 전 한 달의 유예기간 동안 부천의 집을 처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1개월 정도 살다보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남과 부대끼는 것은 영 성미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에어비앤비에서 신축 오피스텔 숙소를 구했습니다. 처음 살았던 그 집은 제가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저는 깔끔하고 모던한 신축 오피스텔이 저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구비되어 있는 비품부터 방문까지 조심스레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 되었을 때는 그냥 제 집이었죠. 그 집은 부천의 집보다 아늑했고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지로 돌아오는 일정을 미루고 충동적으로 임시 집2를 구했습니다.
두 번째 집은 대학교 기숙사가 떠오르는 원룸 방이었습니다. 원치 않게 옆 방의 사생활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집이었습니다. 두 번째 집을 구할 당시, 이미 수중에 있던 퇴직금은 증발된 상태였으나, 저에게는 부천 집을 처분하고 남은 보증금이 있었고 그 돈으로 다시 제주도의 삶을 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계약을 어느덧 6번이나 진행하였네요. 고립된 섬은 저를 치유했으나 안타깝게도 저의 주머니 사정은 점점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빈곤해질수록 현실이 닥쳐옵니다. 언제까지 제가 부랑자로 전전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랑자로서 사는 것이 현실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