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 책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밤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 쓰게 됐어요. 이 글을 다 읽고 당신도 진짜 공간을 탐험해보길 추천해요.
저자 홍윤주는 건축가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사무소에 취직한 그가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 리조트 설계. 작가는 “싫었다”고 말합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인데, 왜 자꾸 정통 유럽식을 따라가야 하는 거죠? 그는 ‘진짜 공간’을 탐사하기로 합니다.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의 건물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 이름의 아파트가 즐비하고 유럽식 공간을 예찬합니다. ‘진짜 공간’을 잊은, 이런 세상이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요소가 빚어낸 총체가 우리 눈앞의 건물이다. 무수한 경우의 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단한 적응을 통해 살아온 과정의 흔적이 건물에 새겨진다." 185
더 럭셔리하고 더 모던한 건물에 대한 욕망이, 이 땅에 오랜 시간 발붙이며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지웁니다. ‘미관상 아름다운’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이 세월의 때가 묻은 옛날식 집들을 대체합니다. 그러나 낡은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채롭고 기발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습니다. 정통 유럽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이.
"코앞에 닥친 생계를 위한, 즐기기 위한, 혹은 둘 다를 위한 삶의 면면에서 배울 것들이 많다.
기름기 없는 생생한 장면들에서." 249
하자를 임시방편으로 보수한 흔적에서는 유머 감각이, 각양각색의 꽃밭에서는 흙만 있으면 씨를 뿌리고 보는 경작 본능이 느껴집니다. 하나의 길거리 매장도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고, 건물 관리 공간엔 온갖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 공간을 사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순간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공식처럼 만들어놓은 길은 재미가 없다.
굽이굽이 의외의 구조물과 만날 수 있는 길이 펼쳐져야 하는데 너무 뻔한 길은 기대가 없어진다.
(...)
철거는 필요하지만, 무허가와 허가를 기준으로 철거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방법이다.
생활사라는 작은 역사도 신중하게 다뤄주면 좋겠다." 339
사람 냄새, 날 것의 정취,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나는 생활 공간. 그리고, 목적의식과 치열함, 동시에 실용성과 심미성, 해학을 모두 잡고야 마는 민족. 2022년의 오늘, 우리가 잊고 사는 건 뭘까요?
건물은 낡아도 역사는 결코 낡지 않습니다. 무심코 지나친 것들이 말해주는 건 꽤 많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진짜공간> 속 사진들을 관찰해 주세요. 그리고 주변의 "진짜 공간"들을 담아 보세요. 제가 느낀 감동을 함께 느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