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본다. 나는 평생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할지라도 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너보다 잘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시간이 멈추기를.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 내가 너와 싸우지도 않고 너와 웃지도 않고 너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이 시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 그 시간이야말로 당신이 누구였는지를 새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눈을 뜨면 당신은 그럴 것이다. 물었던 걸 왜 또 물어? 그러면 나는 그럴 것이다. 또 물으면 안 돼? 왜 안 되는데. 묻고 싶을 수도 있지.
눈을 뜨면 당신은 그럴 것이다.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봐. 그러면 나는 그럴 것이다. 어차피 네가 고를 건데 왜 자꾸 물어.
우리는 물었던 걸 서로 묻고 있지만 하나만큼은 묻고 있지 않다.
“나 청약 한번 알아보려고. 이제 여기 계약 기간 끝나잖아.”
“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자는 얼굴에 대한 글을 읽는다. 알마 출판사의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에는 자는 얼굴에 대한 언급이 두 번 나온다. 하나는 김현의 글, 다른 하나는 신요조의 글이다. 김현의 글에는 부모님의 잠든 얼굴이 등장하고, 신요조의 글에는 부모님과 애인과 자신의 잠든 얼굴이 등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잠이 든 얼굴에는 생의 흔적이 담기는 듯하다. 치열함의 흔적.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자는 모습을 놀리곤 했다. 자신은 절대 코를 골지 않는다는 이종수에게 내가 전날 녹음한 코고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내가 보통 표본실의 개구리 같은 모양새로 잔다는 것도 알아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슬그머니 끝나버렸다. 이종수는 이제 불현듯 생각난 것처럼 ‘어제 신수진 자는 모습 정말 대박이었는데’라고 말하고는 그만이다. 나 역시 이종수의 자는 모습을 두고 놀리는 데 흥미를 잃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부터였는지 이종수가 우스꽝스럽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웃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슬퍼지는 쪽에 가까워졌다.” E-34쪽. 이 글은 그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마음산책)에도 실려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본다. 책의 글들과 달리 나는 아직 너의 얼굴에서 고단함보다는 안온함을 상상한다. 우리가 같은 집 주소를 공유하지 않는 사이여서 다행이다. 네게 드러나는 고단함을 나는 오늘도 지울 수 있다.
조금만 더, 각자의 고단함이 우리의 것이 되는 날을 미뤄두고 싶다.
그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지면 우리 중 누군가는 묻지 않았던 것을 묻고, 그때에 우리는 결정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게 어느 쪽이든. 나는 당신의 잠든 얼굴을 언제까지 안온하다 여길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