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살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집을 구하기 전까지 한 달은 살아야 한다. 호텔 한 달 살기가 콘텐츠로 되는 걸 봤었는데 내가 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넓은 통창에 암막 커튼이 웅장하게 달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불빛이 많다. 창밖엔 새로운 풍경이 가득하다. 높은 빌딩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침을 시작하는 새 소리는 같다. 독수리 같이 생겼지만 말이다. 공간은 여유가 넘치는데 마음은 조급함으로 가득 찬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은 무시무시해 보이는 바깥 사회랑은 구별된 나만의 공간. 그 시작점이 호텔이라 기분이 좋았다. 낯선 나라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 방이 있는 거니까.
"Hello" ^^ ^^ ^^
아침마다 인사해 주는 분이 세 분이나 계신다. 친절함이 가득한 곳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모든 곳이 서비스로 가득해서 그런가. 어깨를 무겁게 하던 짐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친절한 웃음을 머금게 되었다. 따뜻한 인사를 나도 따뜻하게 받고, 다시 주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24시간 친절 모드가 되어갔다.
출근길에 나서는데 유독 'DO NOT DISTURB'라는 사이니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지러운 내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내 방을 아직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DO NOT DISTURB' 카드를 써야 했다. 모호한 경계를 가진 방 문. 그게 내가 호텔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힘든 적응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모든 게 새롭고 쉽지 않은데, 척척 해내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 서글프기까지 했다. 한시라도 빨리 방으로 돌아가 누워있고 싶었다. 마음 편하게 푹 쉴 수 있는 호텔이 있으니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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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키를 대는 곳에 아침에 걸었던 ' DO NOT DISTURB'가 보이지 않는다. 문을 여니 모든 게 새롭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 나의 옷. 새로운 화장품 배열. 흐트러진 침구가 가지런히 빳빳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비집고 누울 틈을 힘껏 힘을 줘서 만들어 내야 했다.
샘솟던 애정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내 방이 될 수는 없었다.
회사로 부터 서비스를 받는 것이었다.
물론 그 서비스는 내가 지불하는 노동 재화이다.
나의 공간으로 잠시나마 만들고 싶어서,
바깥 공간과의 경계를 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DO NOT DISTURB'. "방해하지 마세요" 하고 외치는 나의 작은 절규가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