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계약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현재 제2회 우리 가족 긴급회의가 열리게 된 것도 바로 그 안건 때문이었다. 발의자는 나와 아빠, 엄마였다. 상당히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어디로 이사를 갈 것인가를 의논하기엔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렇게 추려진 우리 가족의 이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금의 아파트보다 좋은 조건의 아파트로 이사갈 것. 그리고 둘째는 내가 전학 없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그렇게 우리 가족은 거의 한 시간 가량 열띤 회의를 했다.
1시간 가량의 회의 이후 결정된 사안은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이동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안이 결정된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가 주변의 아파트에 비해 가장 새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가족 전원의 동의 이후 이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족 회의 이후 몇 주가 지난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이미 우리집은 이사를 완료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새로운 집은 이전 집보다 조용했고 넓었으며, 버스 정류장도 전 집보다 훨씬 가까웠다. 단,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우리 집에 크나큰 결점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해 겨울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 창문에 엄청난 결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환기를 잘 시키고 난방을 약하게 틀어도, 극심한 결로는 벽을 온통 곰팡이 천국으로 만들었다. 인터넷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뽁뽁이를 창에 달거나 설비업자를 불러도 결과는 나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전 집에서는 전혀 결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새로운 집의 하자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리하여 그날 우리 집은 제3회 비상대책회의를 열게 된 것이었다.
"지금부터 제3회 가족 회의를 실시하겠다. 안건은 베란다 창에 맺히는 결로에 관한 건이다."
아빠가 말했다.
"결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벽이 문제야. 곰팡이 없애는 것도 일인데, 매 겨울마다 저러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엄마가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싸매는 동안 아빠가 엄마의 의견을 이어 받아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그래도 정현이 학교다닐 때까지는 이 집에서 살아야할 것 아니야, 결로가 저렇게 심하면 나중에 집 팔 때 골치아플걸."
"그러는 당신은 그럴듯한 해결책은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해봤는데 전부 소용없었잖아."
"그게 없으니까 회의를 하는 거 아냐. ...정현이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조용히 회의를 듣고있던 나는 곰곰이 해결 방안을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한 가지 말을 내뱉었다.
"그럼 집을 여름에 팔면 되지."
잠시 회의에 정적이 흘렀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급하게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럼 정현이 말대로 결로 문제는 이사가기 전까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잘 넘어가 보자고. 우리도 결로라는 하자가 있을 줄 어떻게 알고 집을 계약했겠어. 모두가 몰랐었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나중에도 잘 넘어가 보자고."
"그래요."
단시간에 회의를 끝낸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며 새삼스럽게 이사 때를 회상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집도 여름에 이사를 했었구나."
사람 사는 일, 다 똑같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