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입성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방음이 안 되기로 유명한 우리 기숙사는 어느 정도로 소음에 취약했냐면, 옆방이 전화로 요즘 남자친구가 질린다며 쏟아내는 일장 연설에 그 정도면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훈수를 해줄 수 있을 수준이었다. 벽이 있으나 마나라는 소리였으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그다지 소리에 민감한 성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거슬려서 미칠 정도는 아니었고, 1인실이었기에 그럭저럭 지낼만 했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며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웬만한 옆방의 소음에 익숙해질 무렵. 그날도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밖으로 나가는 준비를 하는 옆방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샤워를 하는 듯 물줄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진동했고, 수도꼭지를 여닫을 때마다 방이 조용해졌다 시끄러워졌다 반복했다. 옷을 갈아입는 듯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드라이기 바람 소리가 거세게 몰아쳤다.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화장을 하는 듯 옆방이 신나는 노래를 틀었다. 옆방의 최신 노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을 때쯤 노래가 꺼졌다. 옆방은 신발장 쪽으로 이동했고 문을 열고, 닫았다. 고요가 밀려왔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옆방은 상당히 빈번하게 나갔고, 또 늦게 귀가했다. 이는 그녀가 저녁마다 기숙사 방이 거지 같다며 한탄하는 이유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나는 옆방이 없는 낮의 시간에 할 일을 몰아서 하고 저녁에는 죽은 듯이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옆방에서 다시금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달갑지 않았다. 옆방이 없는 틈을 타서 컴퓨터를 켰던 나는 머지않아 다시 노트북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옆방이 쉬지 않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급한 택배가 왔겠거니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웹서핑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샌가 소음이 멎어있었다. 옆방이 나갔으니 다시 노트북을 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옆방은 23시라는 정오가 가까운 시각에 다시 들어왔다. 어두워진 방을 밝히려는 듯 스위치가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변은 옆방의 비명으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옆방은 밝아진 방의 무언가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비명에 놀란 나는 벽에 귀를 가까이 대었다. 옆방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마치 고라니 같아서, 가만히 듣던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결국 보다 못한 같은 층에 방을 쓰는 사람들이 복도로 나와 옆방의 방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세요?"
"괜찮아요?"
5분 정도 이후 옆방이 복도로 문을 열고 나왔다. 방문 뒤에 보이는 광경에 충격을 받은 사위가 잠시 잠잠해졌다.
"제 방에 누가 들어왔어요. 누가 허락도 없이 제 방에 들어왔다고요! 그리고 제 방을 저렇게...!"
몇몇 사람들이 관리인 아저씨에게 신고하자며 옆방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무단 침입자로 인해 더럽혀진 방 앞에 모여있던 구경꾼들도 소란이 잠잠해지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제서야 방 밖으로 나와 옆방 문 고리를 잡아 돌렸고, 방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건.... 심각하군."
방바닥은 온갖 오물로 더럽혀져 심각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벽도 난도질 되어있었다. 스토커든 옆방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든 이런 짓을 하고 도망치다니 당사자에겐 꽤나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워낙 단출한 짐이라 옷 몇 가지와 세안 도구, 이불과 담요 몇 개를 챙기니 금세 캐리어가 꽉 찼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볼까나."
나는 문득 낮에 잠시 들렸던 부스럭 소리가 생각났다. 그러나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 있을 법한 사람은 방을 떠났고 그가 사라진 방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캐리어 덜덜덜 끌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