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입주민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게시판에 공지가 붙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주민 단체 톡방에 초대되었다.
-소리 때문에 미치겠어요. 아침 6시에 시작하는 것까진 좋다 이거예요. 평일에 어차피 일어나야 하니까. 그런데 주말까지 이럴 일인가요?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건물 다 올라가면 저흰 어쩌나요? 여기 볕 잘 든다고 다른 집보다 보증금 비싸도 들어온 건데.
-우리 아파트랑 이렇게 가까운데 법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건가요?
몇 달 전이었다. 지나가는 흡연자들의 비공식 흡연실처럼 사용되던 공터에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스멀스멀 어떤 차들이 와서 거기에 수십 개월간 쌓인 방대한 양의 쓰레기들을 치우더니 공사 개요 판이 붙었다. 오피스용 건물이 생기는 모양이다. 20층이나 된단다. 이런저런 걸 다 빼고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여기와 비슷한 높이의 건물이 생길 것이다.
우리 집과는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다른 가구에 비해 공사가 주는 모든 경험을 하고 있다. 소음이라든지, 또 소음이라든지, 그리고 소음이라든지. 게다가 여긴 4층. 앞으로 어느 정도는 반드시 가려질 햇살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느라 동거인과 불화가 생기기도…까진 아니지만, 룸메이트가 심각하게 예민해지긴 했다. 나도 그렇고.
“…야, 오늘 토요일 아니었어?”
“공사에 주말이 없는가 봐. 지난주에도 그랬어.”
그렇다. ‘토요일 아니었어?’는 토요일이냐 아니냐를 묻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앞구르기를 하고 뒤구르기를 하고 거꾸로 보고 똑바로 봐도 오늘 날짜는 토요일일 수밖에 없는데 내 잠을 깨우는 공사는 주말에도 하는 것이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거기 단톡방에선 별말 없고?”
룸메이트의 건조한 목소리. 누구 하나 답변하지 않고 누구 하나 희망차지 않은 단톡방이었다. 입주민 대표가 한마디씩 거들었으나 공감 표현에 불과했다.
사실 누구도 이 문제를 나서서 처리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입주민 대표라고 해도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긴 힘들 것이 뻔하다. 그가 직무 유기라서도 아니고, 감투일 뿐이라서도 아니고. 우리가 무슨 미심쩍은 속내를 숨기고 일을 벌이거나 어떤 음모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긴 임대주택이니까. 그래서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일기장 그 비슷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혹은 데스 노트? 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같은 주제에 대한 불만을 과하게 때론 조금 과장을 덧붙여서 쏟아내도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감정 쓰레기통 같은 것 말이다. 그런 필요에 의해 단톡방이니 입주민 회의니 하는 것들이 운영되는 동안에도 다들 안다.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 결국엔 내 심정과 태도를 바꿔야만 한다는 것. 우린 이미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