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26일은 우리 집의 온기를 결정짓는 원료 구매 날이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가격의 폭등 상황으로 인해 시작된 이 제도는 에너지를 아끼고 계획적으로 쓰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원료를 구매할 수 있는 시기는 월에 두 번이 주어지는데 정기 신청일과 후기 신청일이 있다. 정기 신청일(26일)은 내가 한 달간 얼마만큼의 원료를 쓸 예정인지 계획적으로 결정해 구매하는 날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용 계획이 필요한 만큼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를 후기 신청일에 추가로 구매하게 될 때는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버린다. 매월 26일에 맞춰 기업의 이벤트와 연계된 에너지 할인 행사도 많이 열리게 되어 매월 26일은 국가의 공식적인 '수강 신청 하는 날' 같은 하루가 되었다. 오죽하면 출근 시간도 늦춰질 정도였다.
오늘도 어느 26일과 다름없이 단톡방이 시끄럽게 울렸다. 원료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우리 모두, 기업이 만든 미니 게임과 광고들을 미친듯이 클릭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바우처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꽤 계획적으로 살면서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온 나는 이번 달 구매일만큼은 유독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번 달은 얼마만큼 살 수 있으려나...’
새해부터 미뤄왔던 약속들이 어찌나 많던지… 여윳돈을 다 써버리고 줄일 수 있는 나의 고정 비용은 내 방 온기뿐이었다.
‘날씨도 조금 풀렸으니까... 이번 달은 조금만 구매해야겠어!’
바닥에 이불 깔고 따뜻하게 몸을 데우는 걸 최고 힐링으로 여기는 동생이 나랑 같이 있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릴 게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거운 마음 가득히 평소보다 반을 줄여 원료를 구매했다. 이번 달은 하루하루 쓸 수치를 정해놓고 계량기를 매일 확인하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벌써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미지근한 물로 급하게 샤워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띠링~
오래도록 연락을 못 했던 절친의 연락이었다. 갑자기 서울에 취업해 오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집을 구할 때까지 같이 지내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친구의 부탁을 반가운 마음에 받았다. 이내 이번 달 연료를 충분히 사지 않았단 사실이 조금 늦게 떠올라버렸다. 등이 오싹한 걸 넘어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일 뿐이었다.
뜨거운 온기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는 오랜만에 봐도 변함없이 따뜻했다. 그래서 유독 더 추위를 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평소 온도보다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해야 했다. 나에게 허락된 온기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힘든 마음이 점점 옹졸해지는 마음마저 더해져 딱딱해졌다. 그런 내가 미운 건지 이렇게 만든 친구가 미운 건지 알 수 없었다.
심란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 들어온 집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식탁 위엔 내가 좋아하는 비요뜨랑 탄산수가 놓여 있었다.
내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의 깜짝 선물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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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온기를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싫어졌다.
여유 있게 누군가의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온전히 따뜻함이 넘치는 그대로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내 방의 온기를 갖추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