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오랫동안 홀로 사시던 집을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나의 어린 시절은 늘 할머니와 함께였다. 어린이집에서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도,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차를 타고 온 가족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녔던 순간 중에 가장 뚜렷이 기억에 남는 건,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일이다. 어느 가판대에서 망개떡이 고슬고슬 잎사귀에 쌓여 있는 걸 사서 할머니와 차 안에서 나눠 먹었었다. 떡에서 나는 잎사귀 향기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명절이면 지옥의 고속도로를 뚫어야 도착할 수 있었던 할머니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장롱 속 반듯한 이불에서 나는 약 냄새가 코를 찡긋하게 자극했다.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계단을 내려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셨다. 매주 보는데도 마치 몇 년을 기다리다 만난 막역한 친구처럼 반가워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할머니의 큰 사랑 속에서 나는 자랐고, 그 사랑을 더 크게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할머니랑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꺼내곤 했다.
혼자서 집을 가꿔 더 서늘해지고, 조금은 서글퍼 보이는 할머니의 집을 빨리 나의 온기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할머니는 끝까지“괜찮다”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괜찮겠냐” 하시며 마침내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내 방 바로 옆방에서 일상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이후로는 행복한 감정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교차했다. 새벽 인기척에 살짝 잠이 깨실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새로운 공간을 가족 누구보다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바꿔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또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가족들이 코를 골며 자던 어느 새벽, 부스스 깨버린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다. 그때 할머니도 눈을 뜨시고 방문을 여시더니,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나를 부르셨다. 나는 두꺼운 할머니 이불 속으로 살짝 들어갔다. 내 이불보다 훨씬 포근하고 적당히 따뜻했다. 문득 할머니께서 새로운 환경에서 조금 불편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추억여행을 시작했다. 할머니의 마법 솥 1호 팬인 나는 “옛날 가마솥에서는 밥을 어떻게 만들었어요?” 하고 물으며 그렇게 할머니의 추억 속으로 탑승했다. 할머니의 옛이야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집을 정리하고 돌아올 때, 이번 생은 이렇게 끝이 나는 구나 생각이 들더구나”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였고, 그래서 할머니와 가까이 붙어 그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변치 않고 유지해 온 할머니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며, 정직하고 침묵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세상의 유일한 곳이었다. 그 공간을 서늘하고 서글프게 느꼈던 나 자신이 미웠다. 더 많은 온기를 보탤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한 게 아쉬웠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할머니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집셋 시스템을 만드는 게 참 어렵다. 할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건 그저 옆에 있어 주고, 같이 살면서 더 자주 곁을 지켜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에게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고귀하고 소중한 여행 같은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