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그들은 잠잠히 음식만 즐겼다. 문제는 앞서 무리하게 마신 술 때문에 지영의 취기가 슬슬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술은 언제나 위대한 일을 벌이곤 한다.
“차장님, 밥 안 드세요?”
“먹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그대로잖아요. 접시가.”
“속이 좀 안 좋네요.”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왔는데 속이 안 좋아도 밥은 먹어야죠. 지금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지구촌의 어떤 사람들은 이 밥 한 끼 못 먹어서 굶어 죽고 있는데, 베풀지는 못할망정 남기지는 말아야죠. 그래놓고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년 기부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영이 테이블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클래식이 만연한 레스토랑 안, 지영의 외침이 테이블 방방곡곡 울려 퍼졌다.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손님들은 이제 몰래 본다는 기색을 숨길 생각도 않고 그들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 도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처했다. 지금 방문한 레스토랑은 키친 소유의 공간으로 범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그러나 일반인도 사용하는 장소였기에 조심하여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그런데 지영이 취해 난동을 부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난감한 상황임이 분명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도윤은 아까부터 계속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처리하기엔 아쉬웠다. ···아쉽다?
“미치겠네.”
“어머, 지금 말 다하셨어요? 차장님은 그게 문제예요. 항상 잘난 척, 자기만 좋으면 됐죠? 제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 달을 보냈는지도 모르고. 맨날 뼈 빠져라 일하고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잠고 못 자고 퇴사일만 손꼽아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세 달이 돼도 그만두라는 말 하나 없고, 일만 일대로 늘어가고!”
“사직서를 안 내길래 계속 다니고 싶나 했지.”
“제가 어디 마음대로 퇴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 망할 계약이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는! 읍읍.”
“거기까지. 많이 취했네요. 잠깐 화장실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세요.”
위험 수위까지 올라온 대화로 인해 도윤은 황급히 지영의 입을 틀어막고 식당 밖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쩐지 계획이 순탄치 않게 흘러갈 것 같다. 밖으로 나온 그는 몸도 가누지도 못하는 지영을 화장실로 미뤄 넣고 한숨 돌렸다.
“들려?”
“네. 시작할까요.”
“아니 지금은 안 돼. 상황이 조금 안 좋아서. 계획을 조금 미뤄야 할 수도 있을 것 같군.”
“바로 방으로 가면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목격자가 많아서.”
“당신답지 않군요.”
도윤이 귀에 꽂은 장치를 만지작 거리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뭐에 홀렸나 보지.”
문득 이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미뤘고, 지금도 그랬다.
“있잖아. 내가 촉은 조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거든.”
“······.”
“그런데 왠지 죽이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이번 일 진행 안 하실 겁니까?”
“그렇다고 하면 화낼 건가?”
대기 중인 청소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마음대로 하시죠. 단 오늘 하지 않겠다면, 저는 키친을 떠나겠습니다.”
“야박하네.”
“너무한 건 당신이죠.”
“알았어. 나오면 바로 룸으로 간다.”
“······. 모든 것은 우리의 목표를 위해.”
무전이 종료되었다. 도윤은 지영을 기다렸다. 3분, 5분, 10분.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지영은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나와?”
그가 의구심을 품자마자 돌연 화장실 내에서 폭발적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입을 가리고 동태를 살피고자 했으나 소리 지르며 나오는 인파로 인해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로 인해 제대로 눈을 뜰 수 없기도 했고. 어느 정도 소강이 되자마자 지영을 찾으러 들어간 도윤은 칸칸이 비어있는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고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문 밖으로 나온 사람 중에 지영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아직 죽을 수 없는 몸인가 보다.
“들리나.”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타깃은요.”
“글쎄.”
“네?”
“사라졌어.”
“그게 무슨?”
“사냥감을 빼앗긴 모양이야. 그럼 다시 쫓으러 가볼까?”
“하.”
장치 속 음성은 나지막한 욕설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도윤은 급하게 건물 1층으로 내려갔다. 수연은 대기하고 있던 차 안에서 혼자 빌딩 밖으로 나오는 도윤의 모습을 목격했다. 지영없이 도윤만 혼자 나온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진 수연이 차 밖으로 뛰어나와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녀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폭소했다.
“당신, 서지영 찾고 있지?”
“······.”
“잠깐 차 좀 빌려도 될까?”
“제가 왜요.”
“그거는 별로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서지영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거든.”
충격적인 소식에 수연이 숨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입꼬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알고 있거든. 당신이 저주를 막고 있었던 거. 그래서 오늘 처리하려고 했지. 그런데 일이 이렇게 틀어졌네?”
"······."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도울까."
도윤이 말을 마치자마자 수연이 다시 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며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뭐해요, 안 타고. 망할 놈아."
도윤이 서둘러 수연의 차로 올라탔다. 그렇게 적의 적을 태운 차 한 대가 급히 서울의 시내를 질주했다.
"어디로 간 건지는 아는 거예요?"
"아직. 추적 시작했을 것 같긴 한데 짚이는 곳이 있어서, 일단 이대로 경부고속도로 탑시다."
수연은 지나치게 평온한 사냥감의 자태에 혼란스러웠다. 질끈 입술을 꽉 깨물며 고속도로를 향해 내달렸다. 일단은 친구를 구하러 가는 게 우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