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을 없애는 것도, 소음으로 복수를 하는 것도 정답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건 정답일 수도 없었다. 본질에서 멀어진 혼란이 가득한 세상. 소음대책위원회는 더욱 불화했다. 이들이 야기한 혼란임에도 소음 피커도 시민도 양극에 서서 서로를 미워했다. 부위원장처럼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의 심정을 아느냐는 둥, 위원장처럼 자기가 낸 소음이 아닌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봤냐는 둥 대립하며 각자가 자기의 입장만 고수하는 동안 피해를 보는 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교통사고가 크게 늘었다. 차가 오는 줄 몰라서 피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체의 소음이 사라지고 집 안을 매운 극도의 적막감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단다. 육성의 대화가 줄어들었다. 대화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안적 방법에 익숙하지 못해 오해가 쌓여갔다. 정말 소음 삭제 이전의 세상보다 괜찮은 걸까.
의뢰인들의 안타깝고 곤란한 사연은 정도도 심해졌고 빈도도 잦아졌다. 원치 않게 삭제된 소음을 복구하기 위해 거액의 의뢰를 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의 집도 팔아가며 그들에게만큼은 소중했던 소리를 복구하려 했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구매하려 한다. 그들 중에 몇몇은 목소리로 생계를 꾸려 갔던 사람들이다.
지금으로선 소음으로 보복하는 것보다 삭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복구 의뢰만큼 쏟아지는 보복 의뢰와 여전한 싸움 그리고 그로 인해 만연한 피해가 나를 괴롭게 한다. 돈만 벌면 땡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었나.
어릴 때부터 소리는 내게 자연이었고 세계였다. 혼자 있을 때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세상의 소리들이 내게 다가왔다. 바다의 소리, 밤의 소리, 바람의 소리, 버튼과 컵, 음악과 음정, 기계음과 신호, 호명과 응답. 그것들은 내게 다가와 언제라도 떠올릴 청춘의 한 획을 그었다. 세상을 이루는 음향이 내게 힘을 주었듯이 그리고 그 힘이 나를 키워냈듯이, 사람들의 청감에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야말로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솜, 방문자입니다. 피커 주연입니다.]
“무슨 일이야? 들어와.”
“솜, 네가 필요해. 너 잘하잖아 그거. 소음 재조합. 옛날에 소음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했었다며.”
“그거야 다 옛날 일이지. 그리고… 내가 하던 믹싱은 요즘에 비하면 별 볼 일 없을걸. 갑자기 그건 왜?”
주연은 소음 전쟁 초기에 일어난 소음 유출 사건에 실제로 소음 피커 일부가 개입했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피커들로부터 전달받은 복제 소음을 유출한 그 사건 말이다. 나를 포함해 다들 소음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배후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음 피커들의 짓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고?
“무슨 소리야? 진짜 소음 피커 짓이라는 거야?”
“안심해. 개입은 개입인데, 괜찮은 개입…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모르겠다.”
당시 소음대책위원회가 대립하는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던 피커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소대위의 소음 복제 요구를 듣고 무분별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수집한 소음 그대로가 아닌 재조합 소음을 전송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보복 피해를 본 지역 중 어떤 가구는 재조합한 소음을 듣게 된 것이다. 꽤 ‘괜찮은’ 소리를 듣게 된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상을 모른 채, 복수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며 소음 피커들이 도와줬다는 식으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 피커들은 예전부터 소음 삭제 의뢰를 받으면 의뢰 내용에 없더라도 수집한 소음을 항상 백업해두고, 보복 의뢰를 받으면 일부러 백색 소음 따위를 만들어 소음騷音을 소음消音했다. 하지만 의뢰인과 합의도 없이 삭제 의뢰한 소음을 갖고 있는 건 불법이었다. 게다가 보복이 평화로운 것으로 여겨지다니. 위원장 쪽에서 면이 서지 않아 보복이 소음 피커의 소행이라는 여론을 형성한 것이다.
“사람들이 오히려 그 정도 소음이면 괜찮다고 말해버린 거야. 그리고 우린 거기서 힌트를 얻었지. 상황을 바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생기더라. 수면 장애를 일으킬 정도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일을 하면 뿌듯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요즘 상황에선 뿌듯함도 뭣도 없어서 일을 관둬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거든. 나는 그랬어.”
“…”
“사람들이 모였는데 우리 실력이 부족해. 도와줬으면 좋겠어. 참고로 돈은 안 될 거야. 근데 너 어차피 돈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런 척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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