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진 레스토랑, 두 남녀 사이 소름 끼치는 정적만 맴돈다. 주말 저녁 황금 시간대에 마주 본 두 젊은이가 어색하게 서로의 음식만 들추고 있다. 가끔 오가는 말, 어색한 시선 처리 마주 본 사이의 미묘한 공기까지. 젊음의 분위기가 가득한 모습에 작금 레스토랑을 방문한 노부부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려나 보다 힐긋하며 괜스레 흐뭇해한다. 웨이터는 서비스라며 따르자마자 사라진 여자의 잔에 와인을 힐끔 따르고 간다.
한편 은연중 주변 사람의 주목을 끄는지도 모르는 창가 자리 당사자들의 사정은 그런 로맨틱한 것이 아니었지만. 지영은 간만에 입은 딱 붙는 치마가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도윤 역시 격식을 차린 양복이 불편한지 넥타이를 조금 끄른 상태였다. 시체처리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마주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게 되다니. 지영은 비싼 밥을 입으로 우걱우걱 넣었다. 입에 무엇이라도 넣지 않으면 불편한 정적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막막함이 올 때면 벌컥벌컥 와인을 들이켰다. 도윤은 예상외로 밥을 너무나도 잘 먹는 지영을 얼떨떨하게 관람하며 구석에 다시 꽂은 메뉴판을 펼쳤다.
“더 시켜줘요?”
“... 아뇨, 괜찮아요. 차장님이야말로 안 드세요?”
“먹고 있습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도윤은 웨이터를 불러 이것저것 음식을 더 시켰다. 어느새 텅 빈 자신의 접시와 달리 도윤의 접시는 본연의 상태 그대로였다. 먼저 식당에 오자고 한 것은 그였으면서 왜 안 먹는지 의문스러웠다. 설마 자신의 계획이 들켰나. 참고로 오늘 이 자리에서는 수연과 지영이 계획한 도윤 납치 사건이 진행 중이었다. 그걸 진짜로 진행하냐 하면, 진짜로 진행하게 되었다. 의외로 계획의 수립과 진행은 수월했다. 왜냐하면 그날 골머리를 싸안고 있던 저녁에 도윤이 자신과 단 둘이 저녁을 먹고 싶다며 제안했기 때문이다. 사냥감이 먼저 단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지영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현관에 꽂히는 나이프를 무시한 채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야!”
경악한 수연이 놀라며 서둘러 깨끗한 집기들에 액막이 부적을 붙이기 시작했다.
“성공했어!”
“뭘 성공했는데.”
“둘이서 만나기로 했다고.”
“뭐? 어떻게.”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토요일 저녁에 밥을 먹재.”
수연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영문을 모르겠는 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도윤이 왜 갑자기 자신과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는가, 심지어 토요일 저녁에!
“설마.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나 좋아했던 거 아냐?”
“미쳤냐? 정신 차려.”
“하하하, 그렇지 나도 농담이었어.”
지영은 고양된 기분에 마음이 가는 대로 망언을 지껄이기 시작했고 수연은 당당히 헛다리를 짚는 친구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능성 있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게 아닌가. 도윤이 지영과 둘이 밥을 먹고 싶다고 제안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지영이 일을 잘하는 사원이길 했는가 아니면 사적으로 아는 사이이기라도 했는가. 남자라는 족속이 어떤 목적도 없이 약속을 잡을 일이 없다. 문득 몰려오는 의구심에 수연이 은근슬쩍 자신의 가설을 설명했다.
“...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이 3달 계약인데 아직 너 안 잘랐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럼 진짜 너 좋아했나? 그래서 안 자르고 가만히 내버려둔 거 아냐?”
“뭐?! 설마!”
지영이 기겁했다.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런가? 생각하는 자신의 뇌를 파내고 싶었다.
‘그래서 시체처리할 때 그렇게 잘해줬나? 설마 좋아해서 내가 일을 못해도 안 자른 건가? 그 무시무시한 계약서 이후 딱히 무서운 일도 없었잖아. 시체처리 빼고.......’
급격하게 복잡해지는 지영의 머릿속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연이 신나게 이런저런 계획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둘만 있을 기회가 생겼다면 다행이네. 이 참에 유혹이라도 해봐. 혹시 몰라 안 죽이고 싶어지지 않을지. 일단 본심을 알아야 해. 술이라도 엄청 먹여야 하나?”
“글쎄. 저녁 약속이라 술집에 가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마셔야지. 제정신인 상태에서 살인청부 일을 하는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걸?
"그러면... 술을 마셔야겠네.”
“술에 타는 건 너무 직접적이니까, 숙취해소제에 수면제를 타자. 아니면 마취제?”
지영은 이게 맞나 싶었지만, 착실하게 수연과 공모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을 먹을 장소가 정해졌고, 그곳은 무려 레스토랑이었다. 납치 공모와 더불어 도윤의 지영 짝사랑설이 공포스럽게 확정되기 시작했다. 도윤은 정말 지영을 좋아했나? 아무런 사심 없이 주말 저녁 시간에 여자와 단 둘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남자가 있나? 그런 끔찍한 가설이 부상하며 둘은 하나의 플랜을 추가했다. 이렇게 된 거 그가 지영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마저 이용하자!
그래서 지영은 평소 꺼내지도 않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힐을 신고 도윤과 조우했다. 예상과 달리 도윤은 당황스럽게 한쪽 눈썹을 올려 지영을 쳐다보았지만 착실히 에스코트했다. 차 안에 숨어 몰래 상황을 살피던 수연은 그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정말 좋아하나?’
오해가 쌓여가는 사이 지영의 최후의 만찬 또한 클라이맥스를 향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