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밥의 명장이다. 쌀을 일정한 시간에 맞춰 불려내 매번 같은 밥의 맛을 구현하신다. 혹시나 힘드실까 봐 내가 한 번씩 밥을 안치면 할머니는 주걱으로 이리저리 밥을 구르며“오늘은 꼬들꼬들하다",“물을 많이 넣었네" 등 불만을 표현하셨다. 밥을 다 드실 때까지 밥 이야기만 하다가 식사가 끝난 적도 있다. 그래서 밥 만큼은 프로인 할머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안은 질퍽거리는데 밖은 살짝 꼬들꼬들하며 바닥은 맛있게 눌어있는 할머니의 밥은 정말 명품이었다. 쌀은 고향이신 창녕에서 매번 떨어질 때마다 직접 가셔서 사 오신다. 한번은 쌀이 떨어져서 급하게 동네 마트에서 쌀을 사 온 적이 있는데, 맛이 다르겠지 했지만, 할머니의 마법 솥은 우리가 오래도록 먹어왔던 밥, 쌀의 경험을 그대로 구현했다.
솥은 항상 스테인리스 은색을 유지했다. 몇십년을 써와도 검은 때 하나 없이 할머니는 소중하게 관리하셨다. 그녀는 한 번씩 나의 학교 근처 자취방에 들르실 때마다 검게 관리 안 된 나의 조리 기구를 보며 식겁하셨다. 그런 깨끗한 솥에서 수십 년째 정갈하게 음식을 하셨다. 그녀의 꼿꼿하고 바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솥이다.
솥이 마법 솥으로 되는 순간이 있다. 할머니가 마법의 솥에서 한 번씩 아침부터 분주하게 톡 쏘는 향을 낼 때가 있다. 주로 모두가 집에 있는 주말에 한 번씩 이벤트를 여셨는데, 늦잠을 자려던 순간에도 방으로 밀려오는 '그' 향을 맡으면 눈을 번쩍 떴다. 주말의 피곤함을 잊게 하는,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고소한 향이다. 우리 집은 보리차랑 생수가 유리병 하나씩 담겨있고, 그 옆은 페트병에 담긴 식혜가 한 통 있다. 할머니는 기분 좋을 때, 체력이 좋으실 때마다 식혜를 만드셨다. 다섯 통씩 쌓여있을 때면 우리는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식혜를 한 번에 왕창 마신다. 진짜 맛있다. 그래서 끝을 모르고 마음껏 먹다 보면 페트병의 반 정도만 남아있다. 그때마다 식혜를 비운 사람들을 추리하기도 하고, 예민해져서 누가 냉장고를 열 때면 기분이 묘하게 상하곤 했다. 할머니의 마법 솥에서 탄생하는 식혜는 정말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이 엄청 길어 계속 옆에서 보고 있지 못했다. 뜨거운 식혜가 탄생하면 할머니는 주방에서 나오셨는데, 나는 식혀지는 과정을 참지 못하고 냉장고를 여러 번 열어 맛을 보려다가 할머니에게 혼나곤 했다. 잔소리 한껏 듣고 한 모금 마시면 행복했다. 할머니랑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 볼 때도 속이 든든했다. 마음은 편안해지는 사이 명품 밥알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살짝 살얼음이 얼어 맛있는 식혜가 될 때쯤 분주하게 마법 솥은 다시 우리 가족의 식사를 만들어 줬고, 배가 부를 때쯤 차가운 식혜가 모두의 주말을 산뜻하게 마무리해 줬다. 요즘은 할머니가 마법을 드문드문 부리신다. 그래도 마법 솥은 깨끗하게 수납장에 제일 좋은 자리에 놓여있다.
'이건 할머니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이었으니까...'
긴 고민을 마친 제이미는 6개의 보물을 모두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가족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진짜 집을 찾는 다음 단계를 시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