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부가 한순간 사라진 느낌이다. 경찰서에 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진술하며, 신병이 가라앉고 며칠 동안 성경만 붙잡던 친구를 떠올리며, 옆에 있었음에도 앞으로의 불행을 예견하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문득 속이 허했다. 사람들은 수연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자책보다 더 힘든 것은 상실이었다. 아주 작은 부분이 떨어져 나갔을 뿐인데 얼른 채우라고 난리 치는 마음이 힘들었다. 어른들은 애써 수연을 위로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는데 타인의 눈치를 보며 그녀를 챙기기 바빴다. 애써 힘을 냈다. 잊는 게 답인 것 같아서 잊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내림굿을 받았고, 진짜 무당이 되었다. 지영이 없는 학교를 나가기 힘들어 수업 일수만 채우다 졸업을 했다. 그렇게 졸업식이 되었다.
그러나 끈질기게도 지영은 다시 나타났다. 겨우 다 잊었나 싶은 졸업식날 제 발로 집에 돌아왔다. 실종이 사실은 가출이었나 의심스럽기도 잠시, 지영에게는 2년 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감쪽같이 그때의 기억만 도려낸 듯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기억하는 것은, 실종 당일 하교하던 길에 고모와 만났다는 것. 고모와 대화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에 드러 섰다는 것. 그뿐이었다. 지영이 눈을 뜬 곳은 서울의 어느 호텔 방 안이었다. 그 길로 경찰서에 가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 유괴 사건이라 결론 지은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지만 고모 또한 지영이 없어진 2년 간 실종 상태였다.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영화처럼 시원하게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조용히 사건은 묻혔다. 모두가 진실에 파고들려 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
여러 검사와 심문을 받고 꽤나 시간이 지나서야 지영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무복을 벗고 항상 가던 카페에서 지영을 만났다. 공백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어떤 말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장 가까웠던 세계는 고작 2년이라는 시간만에 먼 세계가 되어있었다. 이윽고 그 세계는 이제 자신과 동떨어져 다시 합쳐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있잖아 수연아, 나 이제 안 보인다?”
“어?”
“몸도 안 아프고 이상한 것도 안 보여.”
“······.”
“다 나았나 봐.”
“···잘됐다.”
“응, 이제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대학도 가야지. 겨우 2년 지났을 뿐인데 세상이 너무 달라져서 신기하다.”
지영은 18살 때처럼 수연과 대화를 했다. 20살을 꾸며내고 있었지만 영락없는 18살의 모습이었다. 지영이 없는 2년의 시간을 보낸 수연으로서는 메울 수 없는 공백. 그 공백이 너무 멀어서 지영의 말이 잘 닿지 않았다.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낸 말들과 함께 수연의 세상에 남아있던 잔해가 떠밀려 갔다. 이미 너무 멀어졌다. 지영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