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모든 마감이 화이트인 밝은 집이다. 새 아파트에 이사하고 10년쯤 지나니 얼룩덜룩한 색깔들이 엄마를 예민하게 했다.
"요즘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하는 게 대세래" "화이트도 색깔이 얼마나 다양한데..." "따뜻한 느낌 주는 흰색 좀 찾아줄래?"
엄마는 추진력이 대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하얀 자재들이 집을 가득 채우더니 금방 새것 같은 하얀 집으로 되었다. 집이 하얀색으로 되니 가구들이 하나둘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엄마는 존재감을 최대한 조화롭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밝은 나무색의 식탁을 유심히 보던 장면이 스쳐 가더니 어느 날 고풍스러운 식탁보로 나무색의 존재감이 덮어져 버렸다.
그중에도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주는 물건이 있었으니, 호두나무의 진한 색을 30년 넘게 유지하던 고동색 나무 의자가 베란다에서 꼿꼿이 앉아있다. 의자는 흐트러지는 자세를 용납하지 않았다. 편안함을 주지 않았기에 엄마의 눈 밖에 아예 난 것 같았다. 그래도 몇번은 이쁜 쿠션도 올려지고, 커버도 씌워지기도 했지만 이내 치워져 버렸다.
버려지기엔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나무 의자 옆 무심히 자리한 식물들이 다섯 번이 넘게 분갈이 될 정도로. 식물과 함께 놓여져 물도 많이 맞았음에도 썩지 않고 찹찹한 온도를 유지하며 의자 본연의 성질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의자가 눈엣가시처럼 여겼지만, 아빠는 그런 의자가 포기되지 않았다. 버리고 싶은 자와 말도 안 된다며 대화를 잘라버리는 자. 둘의 실랑이를 또 10년간 지켜봤다. 6가지 물건 중 나무 의자를 선택하며 뜨겁고 차가운 온도가 동시에 느껴졌지만 뭔가 모를 웃음이 기분 좋게 선택에 힘을 실어주었다.
<관음죽>
나무 의자 옆에 딱 붙어 커오던 게 관음죽이다. 내가 태어날 때 분양받았다고 들었다. 나는 꽤 정신 사납게 컸는데 관음죽은 물만 잘 주면 쑥쑥 컸다. 수월하게 잘 크는 애들이 더 귀염받는다고. 멀리 여행을 갈 때마다 무심코 물을 안 줘 걱정하는 모습을 여러 번 포착했었다.
분갈이할 때마다 "참 잘 기르셨네요" 하는 칭찬도 한몫한 것 같다. 공기 정화 능력이 있다나. 혼날 때 커튼치고 베란다로 가서 흙을 만지면서 우울함을 달랠 때마다 생각이 정리되는데 큰 공신을 해왔다.
몇 년 만에 꽃을 피울 때도, 물 줄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낼 때도 가족들한테 여유와 안정을 줬던 관음죽을 선택했음에 싫어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작가의 말
여섯 가지 보물들에 얽힌 사연들 계속 기대해주세요!
베스트 댓글
ㄴ 계양구 버스장(ID)
하얀색 집의 장점은 무엇을 어떻게 놓아도 다 소화할 수 있다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집의 풍경이 상상되어 흥미진진👀
ㄴ 서교동붙박이(ID)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무 의자가 있기에 우리 집만의 고유함이 생겨났는지도. 그 옆에서 자라 온 관음죽이 가족에 남다른 의미가 된 것도 알고보면 나무 의자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