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했더니.”
“도와주세요···.”
“얼씨구.”
“사람이, 아니 집기가 나를 죽이려고 해요.”
“집기가?”
수연이 차를 끌고 지영의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였다. 별안간 소식을 듣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급하게 올라왔는데 간만에 보는 지영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는 것도 웃겼지만, 의뢰가 있다며 말하는 본새도 어처구니 없었다. 수연이 거침없는 손길로 현관문을 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산 모양으로 뭉쳐져 집주인을 기다리는 집기들이었다. 그 기괴한 광경에 수연이 황급히 문을 닫자 목표물을 잃은 집기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 또한 알고 있었음에도 작금의 상황에 놀라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정도였다. 수연은 이러한 해괴한 현상을 단박에 진단했다.
“원혼이네.”
“원혼?”
“악귀들이 집기에 모조리 붙어버렸어. 이걸 떼어내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어떻게 해?”
“장기 출장료. 삼천만 원.”
“… 악덕 사장.”
수연이 농담을 건네자, 지영은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수연은 지영의 오랜 친구이다. 그녀와 수연의 사이는 조금 기묘했는데, 어렸을 때 지영은 몸이 약했다. 심지어는 귀신을 본다며 헛소리하는 바람에 일찍이 병원을 전전하기보단 무당을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무당들은 지영을 보며 한결같이 어떤 것도 안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곧 죽을 사람에게 보이는 운명이 아이한테 보이고 있으니, 지영의 부모님은 그녀가 죽을까 봐 막대한 돈을 주고 굿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고, 지영의 부모님이 체념하기 시작할 무렵 만난 존재가 지금 수연의 어머니였다. 수연의 어머니는 지방의 용한 무당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지영이 겪는 이상 현상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문제가 없어. 그냥 타고난 거야.”
그녀는 때때로 영안을 타고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안 또한 한 마디로 신을 타고 나 병을 앓는 것이었으므로 신병의 일종이긴 했다.
“그럼, 우리 지영이가 무당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병증이 그리 심하지도 않고. 이 애가 받고 싶다면 받는 거지만 그게 아니면 몇 가지 수칙만 잘 지키면 될 거야.” “다행이네요···.” “혹시 집에 이쪽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아, 일을 하는 사람은 없는데, 저희 누나가···.”
“신병은 내력이 있으면 옮기도 해. 애가 태어난 날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그래도 영안까지 트일 정도면 보통은 아니니 걱정되면 자주 와.”
이후 지영은 잠시 대전으로 내려와 거주했다. 갑작스러운 전학에 혼란스러웠지만, 지영의 부모님이 그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지영은 굳이 그들의 결정에 말을 붙이진 않았다. 이사 오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낼 무렵, 지영의 아버지는 오래전 연을 끊었던 고모에게 연락해 작금의 상황을 알렸다. 고모는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 자기 일이 아니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고모를 더욱 미워했다. 지영은 그러한 아버지를 이해하는 한편으로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고모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수연을 만난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이다.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 싫었던 어느 날. 지영은 수업을 마치고 무작정 신당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신당은 학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그곳과 가까워질수록 인적이 드문해졌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신당에 도착했는데 막상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수연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넌 뭐냐.”
불량한 태도로 쫀드기를 씹으며 그녀를 쳐다보는 수연은 어딘가 앙칼지고 무서웠다. 지영이 더더욱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수연이 불쑥 문을 가리켰다.
“나 집에 못 들어가겠는데.”
그 말에 지영이 호다닥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연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옷을 털고 있는 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들어오지, 그래···?”
지영이 수연을 따라 집에 들어갔다. 평범한 가정집 한구석에 있는 신당을 지나쳐 수연은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너 엄마 손님이야?” “······.” “혹시 말을 못 하니?” “아니···.”
됐다. 그래. 수연은 대화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지영을 마룻바닥에 앉혀놓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했다. 지영은 그 아래편에서 가만히 무릎을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괜히 왔나··· 하고. 지영의 안에서 수연의 인상이 무섭고 거친, 무당 이모의 딸로 굳혀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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