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진이 타기 전부터 기차에 있었다. 진은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찾다가 남자의 옆에 섰는데, 남자는 마치 인기척이란 걸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남자는 창가에 앉아 있었고, 진의 자리는 바로 창가였다. 11호차 2A. 진이 재차 확인했지만 자신이 예약한 좌석이다. 그 자리를 남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일어나는 흔한 착각. 진은 남자를 불러서 일으킬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자신이 복도 쪽 자리에 앉기로 했다. 남자는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가 지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고개에 몇십 킬로짜리 무게 추라도 달렸는지 얼굴이 땅으로 꺼질 것처럼 숙여져 있었다. 기대어 있는 창문이 움푹 팰 정도로 온몸의 지탱을 거기에 맡기고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진은 생면부지인 성인 남성의 눈물을 보다가 자기에게 부재한 어떤 남성이 떠올랐다. 그 사람도 이렇게 울어봤을까? 혹시 그렇다면 그건 언제였을까.
엄마에게 남은 단 한 장의 사진에서 본 그 사람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려 보였었다. 어쩌면 지금 옆자리의 이 남자보다 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진의 생각이 이어졌다.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을 왜.’
진은, 이게 다 혼자 살게 되어서다, 라는 결론을 단숨에 내렸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그게 타당해 보였다. 자신이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사실에 이것저것 이유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딘지 처량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열차가 출발하고 옆자리 남자의 호흡이 전보다 조금은 거칠게 들려올 때쯤, 가방에서 꺼낸 CD 플레이어를 재생했다. 내가 CD를 사 모을 때마다 엄마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당신을 닮아 노래를 좋아하나 봐. 엄마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려워 움직이는 입술만 관찰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천하에 없을 나쁜 새끼라고 했다. 엄마는 홀로 나를 키웠다. 혼자. 혼자 살게 됐다. 그러나 마냥 혼자는 아닌 채로, 돌봐야 할 입의 존재를 매분 매초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혼자 살게 된 나. 진은 몰려오는 생각을 모른 채 하고 싶었다.
있지만 없는 듯 있는 남자. 주변의 존재를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 반응조차 없고 끝내 자기의 존재마저 지워지고 싶어 보이는 사람. 누굴까. 왜 그랬을까. 엄마는 늘 아빠라는 이름의 그를 갸륵하게 여겼다. 물어본 적은 없다.
… 까맣게 타버린 난 그어진 내 진실과 그만큼 더 아팠던 믿음 속에 있어 믿어선 안될 말 믿어선 안될 말 믿어선 안될 말 …
CD 플레이어 재생된 노래가 끝도 없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파묻히고 있던 옆자리 남자는 잦게 헐떡거리더니 이내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참으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지만 성공적이진 않은 것 같았고, 그렇게 느끼는 건 진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만 불쾌감보다 측은지심이 컸던 진과는 달리, 같은 호차의 누군가는 들으라는 듯 몇 번씩이나 큼큼하며 입소리를 내었다. 곧 승무원이 나타났는데, 아무렴 컴플레인이 들어간 것일 테지.
승무원은 고객님, 하며 무척 상냥한 목소리로 옆자리 남자를 불렀다.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더 큰 헐떡거림이었다. 승무원은 마치 옆자리 남자가 울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 싶지 않아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랬고, 옆자리 남자도 그랬고, 승무원도 그랬고, 승무원에게 컴플레인을 건 사람도 그랬다. 우린 알고 싶지 않아 한다.
“힘든 일 있나 봐요.”
네네. 조용히 해야죠. 알겠습니다. 옆자리 남자 대신 대답하느라 빼놓은 이어폰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믿어선 안될 말 믿어선 안될 말 믿어선 안될 말….
진은 CD 플레이어를 옆자리 남자에게 건넸다. 파우치에서 찾아낸 휴지와 함께.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게 되면, 믿을 수밖에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닮아 노래를 좋아하나 봐,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살아 있어 보여. 엄마가 중얼거리던 혼잣말이 노랫말이 떠난 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