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음대책위원회의 이름 모를 높은 사람에게 의뢰를 받고 행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이레가 지났다. 처음에는 한 아파트 101동의 소음을 모두 없애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아파트는 강남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시공 과정의 문제로 인해 여러 차례 논란이 불거졌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의뢰 내용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120 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모두 삭제할 것. 단, 흡수한 소음은 삭제 전 복사 후 다음의 이메일 주소로 전송 요망.
삭제와 복제. 의뢰자의 부탁에 따라 나는 아파트를 순회하며 조심스레 소음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 아파트 동의 소음을 제거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냥 아파트 외벽에 소음 흡착기를 부착하고 데시벨의 범위를 설정한 다음 제거 버튼을 누르면 끝이었겠지만. 무고한 사람의 목소리를 흡수하여 인명피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헌데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공익을 위한 것 아닌가?
기분이 좋아졌다. 정부가 드디어 소음 피커의 규제를 완화하고 그를 통해 좋은 일을 하기로 한 모양이다. 물론 그에 따른 페이도 두둑히 챙기는거고.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의뢰를 마치고 보고를 했다. 그러자 나에게 돌아온 의뢰자의 답은 가관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이죠?"
하 참, 이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금된 금액을 본 다음에는 절로 수긍했다. 의뢰자는 곧바로 다시 의뢰를 넣었다. 다음에는 102동이었다. 그렇게 소음을 흡수하고 제거하고 복제하여 전송하는 것을 반복한 지 며칠. 흡수에 익숙해진 나는 점점 속도를 빨리하여 일을 처리했고 이레만에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속 120 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전부 삭제할 수 있었다. 물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의뢰는 마무리되었고 아파트에는 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졌다.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만끽했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솜, 메시지가 왔습니다. 확인할까요? 발신인은 피커 주연입니다.]
그는 나의 소음 피커 동료였다.
"확인해줘, 뮤트."
[솜 혹시 너도 소음대책위원회에서 의뢰 들어왔니?]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메시지를 본 즉시 주연에게 연락했다.
"너도 의뢰받았어?"
"응. 나는 한새울 아파트의 소음 제거를 맡았어."
"나는 미래타운 1단지."
"그래? 다른 피커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요즘 소음대책위원회에서 들어온 의뢰를 처리하느라 바쁘대. 소음을 삭제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복제를 해달라고 하는 거지?"
글쎄.
의문만 남긴 채 통화는 종료되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서울의 아파트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음 보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요 며칠 소음 피커들이 단지를 활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며 소음 피커들이 소음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저건⋯ 내가 한 짓이 아닌데?
술맛이 떨어지는 기분에 잔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내가 복제한 소음을 유출하고 있다.
이건 아마 의뢰자의 소행일 것이다.
나는 돈을 받은 입장에서, 의뢰자의 만행을 묵과할 수 밖에 없었다. 소음대책위원회에서 내가 복제한 소음을 다시 유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내게 소음 삭제를 의뢰한 거지? 내가 한 일은 소음 청소가 아니었나? 내가 청소한 소음으로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
결국은 매너리즘이다.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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