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리자 정우는 연장을 몇 가지 가지고 간다며 지영에게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 했다. 살인 현장에 홀로 남아 있는다라…. 어쩐지 공포 영화가 생각나는 클리셰였지만 기왕이면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지영의 생각과 달리 산장 자체는 엄청나게 평범한 ‘집’이었다. 보통의 가정집. 그러나 내부는 평범과 거리가 멀었다. 집이 난장이 되어 있어 무섭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집은 아무것도 없어서 무서웠다. 너무 텅 비어 있어서 마치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집, 그것이 이 집의 정체 같았다. 벽난로라도 내장되어 있을 것 같은 외관과 달리 거실은 폐가와 같이 텅 비어있었다. 거실의 황량함에 괜히 공기가 냉랭한 것 같아 지영은 팔을 쓸며 내부를 구경했다. 시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도윤이 연장을 들고 들어오자, 둘은 함께 안방이라고 추정되는 공간에 들어갔다.
공허한 방 한가운데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지영이 처리해야 할 시체가 그곳에 올라가 있었다. 흰옷을 입고 가지런히 누워있는 시체는 당장이라도 일어서서 걸어 다닐 것만 같이 평온해 보였으나, 시선이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시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그 서늘한 시체는 총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듯 얼굴의 한가운데가 비어있었다. 지영은 그곳에 시선이 도달하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어쩐지 그 충격적인 광경이 머리에 맴돌아 토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영이 입가에 손을 갖다 대고 조용히 있자 도윤은 그런 지영을 바라보다 연장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보기 힘든가요?”
“생각보다 참을 만합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도 생각보다 얌전한 반응이라 안심했습니다.”
얌전한 반응은 뭐야.
“그나저나 시체 처리라 해서 유혈이 낭자하고 선혈이 흩뿌려져 있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네요.”
“실망했던 거였나?”
“다 들리거든요.”
“다음에는 아닐 수도 있어요. 이렇게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체 처리가 자행되지도 않고. 오늘 시체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여서, 이미 죽어서 이곳으로 배달 온 시체입니다. 현장은 뭐, 제 나름대로 배려를 해서 미리 다 치워놓은 거라 할까. 그것 때문에 출근이 조금 늦었죠”
원래 맨날 늦으면서. 지영은 시체를 보는 것에 조금 익숙해져 도윤을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그 시체 처리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물어보고 온 거 아니었나?”
“........”
“그럴 수도 있죠. 시체 처리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고, 말하자면 단순한 육체노동입니다. 미디어에서 많이 봤을 것 같은데,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묻어버리기. 알죠? 여기는 산이라 바로 묻으면 돼서 더 간단하답니다.”
“설마 이 시체를 저 혼자서…?”
“당연히 아니죠. 시체 처리는 기본 2인 1조입니다. 오늘은 친히 제가 나섰지만, 앞으로는 키친의 멤버들이 번갈아 가며 지영 씨를 도와줄 거예요. 원래는 말단 직원들이 하는 일이지만, 키친에는 말단 직원이 지영 씨 말고는 없어서, 지영 씨가 없었을 때는 가위바위보로 정해서 처리하곤 했죠. 조금 우습죠?”
별로 웃기지 않았다.
“사용하는 연장은 별거 없습니다. 현장에 따라 다르긴 한데, 오늘은 바로 이 옆에 산에 묻을 거라 이 운반기를 조립하고, 시체를 담고, 땅을 파고, 덮으면 끝. 쉽죠?”
그것참 쉬웠다. 지영은 거의 조립이 된 운반기를 보다가 시체 쪽으로 향했다.
“드는 곳은 제가 선택해도 되나요?”
“편하신 대로.”
도윤이 정리된 운반기를 침대맡에 내려놓았고 둘은 시체를 운반기에 실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리 쪽의 운반기를 끄는 지영은 언뜻 보이는 시체의 얼굴을 보며, 이름모를 이는 어떻게 이곳에 도달했나 생각했다. 조금은 특별한 시체라고 했다. 어쩌면 저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보통의 사람이었을까. 뭐가 됐든 간에 그는 오늘, 이곳에서 관도 없이 쓸쓸하게 사라진다. 편해지려나? 잘 모르겠다. 이곳에 온 후 그녀는 모르는 것 투성이가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산을 오르는 일은 고됐지만, 땅을 파는 일은 그보다 더 고됐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흙을 파내야 했고, 그 많은 양의 흙을 다시 덮는 것도 일이었다. 이 산에는 몇 구의 시체가 묻어있을까. 시체를 다 묻은 지영은 땀을 닦아내며 도윤이 내미는 물을 마셨다. 도윤은 말없이 지영의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잘만 가던 시간이 요 며칠 사이 너무나도 천천히 가는 기분이다. 그때, 형체 없는 연기가 하늘을 향해 물결치며 올라갔다. 미약한 푸른색을 띠는 연기는 지영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다가 그녀의 볼을 훑고 유유히 하늘로 떠났다.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들어 지영은 붉은 노을 속에 감춰진 푸른 연기를 찾았으나, 연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익숙한 기분.”
“어디서 시체 처리 해보고 온 거 였어요?”
“아니에요!”
어디에서 봤더라. 지영은 다 마신 물의 페트병을 구기고 연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영을 보는 정우의 눈이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