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씨가 엘리베이터에 공지를 붙이고 있다. 지난번 입주민 회의 때 통과된 내용이었다. 커뮤니티 활동에 배정된 예산으로 플리마켓을 추진하게 되었으니 참여를 독려하는 공지. 많이들 참여해 줬으면 좋겠는데.
몇 달 전 먼지다듬이 때도 관리사무실에서 먼지다듬이가 있다는 세대로부터 제보를 받아 업체에게 방역을 맡기고…. 뭐 그게 다였다. 효과가 그다지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먼지다듬이가 사라졌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임대인 쪽에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니까. 몇몇 입주민들이 추후 계획에 관해 의견을 내었지만, 유야무야 마무리되고 말았다.
주영 씨는 내심 걱정스러웠다. 아무도 참여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으면 어쩌나. 애초에 세대 수가 너무 많은 곳인지라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합심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플리마켓 같은 단발성 이벤트는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참여자가 저조하면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지 뭐. 당근 같은 곳에서 지역 홍보라도 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종이를 부착하는 손길에 긴장과 설렘이 묻어났다.
오, 플리마켓. 주영 씨가 방금 붙여놓은 플리마켓 안내문이 수호 씨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금세 팔고 싶은 물건을 떠올렸다. 이제 음악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공부에 집중하려면 당장 해야할 것은 방해가 될 것들을 치우는 일일 테고, 그러면 자신을 안달복달 못하게 만드는 것들은 일단 팔아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플리마켓. 진 씨의 눈이 반짝였다. 신청 큐알 접속 완료. 고민해 볼 것도 없었다. 진 씨은 지금 당장이라도 집안에서 물건을 꺼내올 것만 같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당근에 글 올리는 것도 슬슬 귀찮아져서 쓸만한 것들도 죄다 버리고 있는 참이었다. 가구를 싹 버리고 가장 예쁜 가구들만 최소한으로 들여주겠어. 내 추구미, 트렌디 미니멀리스트, 이번에야말로 정복한다.
오, 플리마켓! 막 퇴근한 세연 씨. 엘리베이터에서 못 보던 공지를 발견하곤 금세 신이 났다. 팀을 이루어 판매자가 될 수 있다는 문장에 세연 씨는 망설임 없이 인경 씨에게 신청 링크를 보냈다.
- 우리 옷 팔자. 취향 달라서 너무 재밌을 것 같아.
- 오키오키. 겨울 옷 정리해야 했었는데 잘 됐어.
밤이 되어서야 퇴근한 휘겸 씨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회신하지 못한 슬랙 메시지들에 답장하느라 숙여 있던 고개가 내리기 직전에야 바로 섰다. 그제야 플리마켓 공지를 발견한 휘겸 씨가 스치듯 본 공지에서 날짜를 확인했다. 토요일이면 윤지 오는 날인데. 같이 구경해야지. 그가 슬랙을 끄고 통화 목록을 열며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엉. 나 집 왔어. 그 다다다음주 토요일 있잖아…”
새벽녘, 오늘도 밤을 지새운 재하 씨는 잠이 안 오는 김에 분리수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거 언제부터 붙어 있던 거지? 며칠째 집 밖을 안 나갔더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왠지 관심이 간다.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참이기에. 정리를 해야만 한다. 비워내야만 한다. 방도, 마음도. 공지의 큐알코드가 재하 씨의 카메라에 스캔 된 순간, 엘리베이터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