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하루만 재워달라니. 그리고 나는 이 갑작스러운 연락이 놀랍게도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오라고 해버린 걸 보면 말이지.
세연이 온다. 세연을 만난다. 5년 만에.
세연은 솜사탕 같은 사람이었다. 해사한 날에 특별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있으면 존재감으로 꽉 차고, 그 존재감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 그에 비해 나는, 흰 도화지에 흘린 물방울? 샤프심 통에 들어 있는 애매하게 부러진 샤프심? 흐음, 있는 듯 없는 듯 있다는 소리다.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걸 알았어도 그렇구나 싶은 사람이랄까. 세연은 한 마디로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인경이 맞아? 선배들이 오늘 너 여기 온다고 해서 기다렸어.”
세연과 나는 대학 신입생 때 학보사에서 처음 만났다. 세연이는 대부분의 동아리나 자치 단체 모집 기간이 마무리 되고 며칠이 지나서야 학보사에 들어왔다. 원래 들어오기로 했던 있던 아이가 가입하지 않게 되어 들어온, 일명 예비 1번 후보였던 것이다.
다른 신입생들에게 관심이 없었던지라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사람들과 소식들에 관심이 없는 동안 세연이는 진작 나에 대해 다 알아버린 것 같았지만.
“왜?”
“어?”
“기다렸는데?”
해맑게 웃던 세연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번졌다. 아, 내가 또. 그럴려고 그런 거 아닌데. 진짜 궁금해서 그런건데. 웃자 웃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인경아. 오는 친구를 막을 필요는 없지 않겠니?
“아, 아니. 따지는 게 아니고 궁금해서 그래.”
그랬더니 이 친구는 금세 얼굴이 풀어졌다.
“같은 과라잖아! 오늘 무슨 수업 듣고 온 거야? 전공 수업 없지 않아?”
“서양 고전 문학 읽기라고 교양 수업.”
“오, 그거 재밌어?”
세연은 학교홍보대사가 하고 싶었단다. 날짜를 챙기지 못한 탓에 지원하지 못했고 신청 기간이 남은 동아리나 자치 기관 중에서 그나마 학교와 관련이 깊은 게 학보사라서 들어왔다고 했다. 자기는 대학에 로망이 있어서 뭔가 대학에서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동을 하고 싶었고 실은 그다지 큰 관심은 없단다. 기사라는 것에, 글을 쓴다는 것에, 취재를 한다는 것에, 학교를 ‘사회’로 보는 것에. 그 아이는 아마 서양 고전 문학 읽기가 재미있는지 없는지에도 딱히 큰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해맑은 얼굴로 나를 가장 치열하게 만들고 또 가장 고민하게 만들고 동시에 괴롭게 만드는 일을 관심도 없다는 말로 일축해 버린 그 얼굴이 조금, 얄미웠다. 무해한 표정으로 간단하게 싫다고 말하는 모습에 살짝 짜증이 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흐음, 그게 재미있단 말이지. 난 지금 열심히 놀고 친구 사귀고 빨리 취직해서 돈 벌고 또 하고 싶은 재밌는 거 하면서 살 거야.”
“그래, 그래.”
“물론 너랑!”
알고 보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심 같은 거였을 터다. 나는 너무 진지하니까. 그에 비해 이 아이는 간단하니까. 나는 진지한 걸 얜 간단하게 해낸 거니까. 결국 여기에 가입하게 됐다는 건, 관심 없이 가볍게 써낸 가입 심사용 기사랄 것이 괜찮았다는 소리니까. 그래, 혹은 부러움이라고 말해도 좋겠지.
“근데 너 친구 없니? 나랑 왜 이렇게 놀려고 해, 참.“
하지만 그걸 끝내 뱉어낸 적은 없었다. 대신 방향을 상대에게 돌린 엉성한 물음으로 나의 부러움을 덮으려 애썼다. 얘는 왜 나랑 친해지고 싶어하지…. 실은 나와 다른 네가 대단해서 생겨난 의문이었다. 말 꼬리를 늘이며 장난스럽게 한 말에 세연이는,
“나는 친구 많지. 근데 너는 없잖아.”
역시 장난스럽게 받아 치면서 깔깔깔 웃곤 했다.
“장난이고, 인경이 멋있어서 친해지고 싶었어. 뭐든 잘하잖아. 그래서 부러워서. 똑똑하고, 똑부러지고, 지적인 쿨미인이야.”
칭찬에 후하고 부러움을 말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세연이는 그런 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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