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부서졌던 일상은 어느정도 수복되었다. 이제 "코로나"라는 단어는 독감 정도의 영향력밖에 지니지 않는 한미한 바이러스가 되었고(A의 체감 상.), 코로나에 대한 종식을 선포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왠지 안전불감증에 이은 코로나 불감증을 얻은 것만 같다.(일단 A는 그렇다.)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면역력 짱이라는 훈장일 뿐이며, 걸렸다는 사실은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으로 치부되고, 두 번 이상 걸렸다면 코로나 용사라는 칭호를 획득하는 것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이에 꿀이었는지 지옥이었을지 모르겠을 A의 비대면 생활도 막을 내렸다.
늘여놓은 비대면 업무의 향연에 워라밸을 외치던 한량한 대학생의 일상이 돌아온 것이었다. 3년 만이었다. 다만, 일상이 회복되었어도 A의 취미는 여전히 만화책 수집이었으며, 여전히 웹소설을 읽었고 애니를 보았다. 코로나가 종식되었어도 리디북스의 헤비 유저가 되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달라진 점은 지옥철을 타고 등교하며 진실된 대학 생활이라는 것은 단순한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집이 최고였다.
집 밖으로 탈출했지만 얻은 것은 가중된 책임밖에 없었다. 쾌락에도 책임은 동반되었다. 심지어 젊은 것이 무기라는 것도 유통 기한이 아슬아슬해져서 뭐 먹고 살까하는 고민만 늘어났다. 코로나의 부작용이었던 연락 공포증은 점점 무기력증으로 변모했다. 취업 공고를 보아도 인턴 아니면 계약직. 그것도 경쟁률이 기본 수십대 일이었다. 불안정한 미래는 다시금 침대에 있는 시간을 늘릴 뿐이라 A는 방학 동안 명탐정 코난 정주행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고민은 콘텐츠로 도피하는 생을 낳았고, 애벌레는 번데기로 진화했다.
번데기의 꿈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태풍을 견딜 수 있는 집 한채면 충분했는데... '대학교'라는 집이 없어졌을 때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집이 없었다. 그렇게 파고들다보면 결국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반복 작업은 정신 건강에 해로울 뿐이었다. 한순간의 풍족은 탕진으로 허무만을 불러왔다. 멈추지 말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아가자는 용기를 얻는 것이 무서운 요즘이다. 더운 날 집에서 선풍기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취업이 되길 원하지만, 내가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노력을 해야 겨우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 나날이 올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가난한 홈리스의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도 나의 일상은 무너지지 않으며 평범하기만 하다. 범상치 않은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적어도 나에게는)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발버둥치다보면 번데기는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단, 어떤 방향으로 날아갈지는 나비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린 결론은 무기력이란, 변태를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명탐정 코난을 정주행하는 A는 이번 방학이 저번 코로나 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단지 두 달간은 온화하게 살아가자는 다짐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견뎌보기로 했다. 그것이 평범한 방구석에서 예비 백수를 꿈꾸는 대학생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