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한 가정되세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에 붙여진 현수막에 쓰인 문구였다. 무엇을 홍보하는 그림도 없이 덩그러니 문구만이 현수막에 대롱 붙어있었다. 혹여나 주택관리인이 붙인 것일까. 처음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현수막은 몇 달째 저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간만에 야근 없는 날이었다. 퇴근길을 만끽하며 집을 향하다가 우연히 현관 앞에서 집주인 분을 만났다.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현수막의 존재가 떠올랐다.
"저 앞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어쩌다 붙이시게 된 거예요?"
"아, 저 앞에 현수막? 저거 불법 현수막이야. 몇 번이나 구청 불러다가 떼달라고 부탁했는데, 떼면 붙이고 또 떼면 또 붙이고 그런다니까. 별 이상한 현수막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찜찜하긴 하지?"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벚꽃 나무 사이에 적절하게 자리 잡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인 현수막이 갑자기 어색해 보이기 시작했다. 불법이라서 그런가, 처음에는 훈훈하다고 생각했던 현수막이 골칫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방에 들어가 불법 현수막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는데, 불법 현수막을 10매 모으면 보상금을 준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나는 집에 있던 커터칼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현수막은 커다란 벚꽃 나무들의 사이, 그러니까 나무와 나무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단단히 묶여있는 하얀 끈이 가지에 옹골차게 붙어있었다. 현수막을 지탱하고 있는 하얀 노끈은 생각보다 단단히 묶여있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칼을 이용해 풀어낼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요상한 현수막 한 장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현수막은 다시 재생되었다. 흰 바탕에 궁서체로 쓰인 "화평한 가정되세요."라는 문구가 신경질 나 바로 현수막을 뜯어 버렸다. 현수막은 지겹지도 않은 지 관리인의 말과 같이 떼어내면 또 붙어있고 아무리 없애도 다시 생성되어 있었다. 현수막을 다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간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가 현수막을 9번째 현수막을 뗀 다음 날이었다. 조금 있으면 받을 수 있는 보상금에 즐겁게 출근길을 나섰는데 놀랍게도 현수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앞으로 1개만 더 모으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쉬움과 후련함이 동시에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비록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받을 수 있는 돈은 물 건너 갔지만 화평했던 나의 집 앞에 무단 점거하고 있던 현수막이 사라지니 비로소 가정의 화평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동안 모았던 현수막을 버리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문득 아홉 번째에 떼었던 하나의 현수막에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평한 가정되셨나요?”
정말 요상한 현수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