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에게 있어 설날은 어른들께 용돈을 받는 특별한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대명절이라는 설날이지만 이날만 다가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족들과 밥만 먹기 때문에 그러한데요. 저희 집은 친가, 외가를 포함하여 어린 사람이 그다지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냥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있어 왁자지껄한 설날은 거의 꿈 속에서만 그려지는 상상에 불가합니다.
AM 8:00 그래도 설날이기 때문에 체면을 차리고자 아침부터 친할머니의집으로 향합니다. 이제 벌써 23살이 되어버린 저는 무려 이 집의 막내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제 위로 두 명의 손자와 한 명의 손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손은 미국에서 생활하느라, 저를 제외한 다른 손녀는 결혼을 해서, 드물게 가족 행사에 얼굴을 비칠 뿐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저와 연년생인 또다른 손자인 사촌 오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촌 오빠는 저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사촌 언니가 없으면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따라서 포지션이 애매한 저는 이 집안의 막둥이자 유일무이한 손녀로서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AM 8:30 새배를 하고 용돈을 받습니다. 이 시간이 가장 설레는 시간입니다.
AM 9:00 설날이니 아침으로 떡국을 먹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생략하고 잠을 선택할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AM 10:30 사촌 언니(있을 시)와 사촌 오빠와 함께 마트로 간식을 사러 갑니다. 할머니나 큰아빠, 혹은 아빠가 용돈을 주시면 그 돈을 가지고 카페와 마트를 순회하며 먹고 싶은 간식을 사가는 것이 필수 코스입니다. 아이스크림과 같은 후식은 절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PM 1:00 엄마와 큰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습니다. 이때는 불판을 꺼내서 LA갈비나 양념 갈비 등을 구워서 먹습니다. 반찬은 주로 전이나 나물류입니다. 예전에는 엄마와 큰엄마의 손맛이 담긴 반찬을 먹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저희 집에도 사제 반찬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지하는 바에요.
PM 2:00 놀거나 쉽니다. 아침에 사온 간식을 흡입하며 몸에 지방을 축적해줍니다.
PM 4:00 집에서 애타게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멍멍이들 산책을 위해 집으로 떠납니다.
이상입니다. 정말 별 거없음 그 자체이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간결하고 독특한(?) 타임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은 주로 설날 당일에 친가를, 그리고 주변 설날에 외가를 가곤 하는데요. 외가에는 심지어 저밖에 손주가 없어서 점심만 먹고 헤어진답니다. 대가족이 아닌지라 서글픈 설날이지만 그래도 용돈과 함께하면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설날을 보낼 예정이실까요? 저는 이번 설날은 아르바이트와 함께 할 것 같지만, 월요일에 할머니댁에 가게 되어 용돈은 사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돈을 졸업할 날이 머지않아 슬프네요.
모두 행복한 설날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