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라는 말엔 힘이 있다. 작년에 실패했어도 올해는 잘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양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오늘이 새해이건 2023년이건 달라진 일은 없다. 작년 새해를 생각해보라.
00시 정각에 제야의 종소리를 틀어주는 방송국을 찾는다. 오늘도 열심히 외근하는 방송사 아나운서의 카운트다운에 맞추어 가족들과 함께 숫자 세 개를 외치고 나면 새해다. 생각보다 허무한 기분이지만 어찌 됐든 새해다.
새해 첫날 처음 들은 노래가 올해의 운수를 결정하므로 신중하게 들을 노래를 결정한다. 노래를 들으며 방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자고 일어나면 아침으로 떡국을 먹는다. 올해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체감하며 다소 건조한 감상과 함께 친가로 떠난다. 대가족끼리의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에는 그냥 놀고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들어온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연례행사를 매년 반복하고 있다.
올해는 새해가 오는 줄도 몰랐다. 아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까. 생각해보면 작년을 만족할만큼 성실히 보낸 것 같지 않다. 바쁜 일상에 지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만도 않았다. 의욕만 앞서 어정쩡하게 무언가를 시작하려 했으나 도통 마음이 잡히지 않아 포기하고 실패하고의 반복이었다. 분명 이룬 것도 있으나 나는 아직도 2021년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상태로 해가 넘어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2021년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상태로 내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2022년이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새해맞이 종소리도 듣지 않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다가 잤다. 첫 곡을 들어야 되는데 생각만 하다 깜빡하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수현님은 올해 첫 곡으로 무슨 노래 들었어요?”
같이 일하는 분이 건네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첫 곡을 뭘 들을지 고민만 하다 잠에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어제 노래도 못 듣고 그냥 자버렸네요.”
“아, 그럼 지금 듣고 있는 노래가 첫 곡인 것 아니에요?”
매장에는 철 지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기분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어 버렸다. 어쩌면 내 마음이 아직 크리스마스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노래에게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새해가 뭐 특별한가. 이렇게 흘러가듯 새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올해에는 친가를 방문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했기 때문에 저녁에 떡국을 먹었다. 1월 1일이 되어서야 23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작년과 전혀 다른 새해가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를 평범하게 살았을 뿐인데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하루가 완성되어 있었다. 새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 마음으로 이번 년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
잘 먹고 잘 놀기.
작년보다 잘 먹고 잘 놀자. 그리고 작년보다 나아진 오늘을 살아가자. 평범하지만 체계적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무언가를 시작해보자. 그날 새벽에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 올라왔다. 'Fuckin‘ New Year'이라니. 재미있는 노래 제목이다. 작년보다 올해 상처가 더 많아질 수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확신도 나에 대한 신뢰도 바닥났지만,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가다 보면 작년과 다른 특별한 오늘이 조금씩 다가올 것이다. 평범하게 집에서 새해를 보내는 것도 나름 좋았다. 올해 첫 노래는 이걸로 할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