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붙을 만한 곳에 가기만 한다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 외부로부터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
성민은 자기의 존재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한정식집에서 서빙되는 맥앤드치즈랄까.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건, 그들의 눈에 비친 물음표를 성민은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문제였지 싶다. 자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해버린 것.
적합한 곳이 아니면 자석은 떨어진다. 붙어 있을 자리를 찾는 일에 실패했다. 실패 중이다. 성민은 겉돌았다. 자성이 없는 곳에 던져져 버린 자석처럼 겉돌았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디에 있든 겉돌았다. 그 애는 우리랑 너무 달라. 생각하는 게 조금 이상해.
성민은 가끔 교실 창문 너머의 하늘을 보며 날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만 아주 진지하게. 비둘기와 대화를 했을 뿐이다. 다만 아주 진지하게. (대화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 둔다. 말이 오가는)
어떻게 저떻게 취업한 첫 회사에서 성민은 일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는 놈으로 통했다. 성민은 그들이 하라고 하는 것과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방법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고 해야 맞겠다. 다만 사람들의 눈엔 그냥 전두엽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들의 손을 버틸 재간도 못 되었다. 성민은 외부의 힘에 민감했다. 누가 힘주어 당기면 물러섰다. 어떤 때는 그걸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이것만큼은 잘 할 수 있다는 듯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처럼 버티지 않고 물러났다. 버티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으려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나는 건 됐으니 자석이라도 되었으면.
이상한 인간도 고독과 도태가 무엇인 줄은 안다.
성민은 밤이면 자석이 되는 상상을 한다. 집 안 구석구석 붙어 있을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는 상상을 한다. 길거리 곳곳 붙어 있을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는 상상을 한다. 쇠문에 드림캐처나 현관종을 붙여주는 걸이가 되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가 해외여행 기념품으로 사 모은 관광 명소 모양의 자석이 되어 그 집 냉장고에 오와 열을 맞춰 붙어 있는 자석 가운데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한다. 어디 게시판에서 안내문을 고정시키고 있는 상상을 한다. 유치원의 교구가 되어 자석 놀이하는 어린이 손에 붙들린 상상을 한다.
다들 자석이 필요하다. 나도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 맞는 쓰임과 용도. 나도 맞게 쓰이고 싶다. 자석이고 싶다는 성민의 말은 다른 말로 바뀐다.
성민은 집 청소를 하는 척하면서 실은 온갖 곳에다 다 자석을 붙여보고 있다. 앗 여긴 알고 보니 플라스틱. 생긴 건 아니었는데. 그걸 굳이 일일이 붙이면서 확인하는 그의 동작은 비둘기를 쫓아가며 대화할 때만큼 빠르다. 확실히 전두엽은 잘못이 없다.
성민은 안방을 비롯한 모든 가족의 방을 순회하고 화장실과 부엌과 현관까지 확인한 다음 갖가지 짐들로 가려져 왔던 비밀스러운 방 하나를 기어코 찾아낸다. 이런 곳이 있었던가. 기억에서마저 지워져 버린 공간이었다.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머릿속으로 집을 그려낼 땐 늘 빠져 있는 곳. 창고. 있다는 건 알지만 누구에게나 지워져 있는 사람. 성민. 이상하게 성민은 거기에 자석이 붙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성민 본인이 유일하게 인정한 이상한 생각이었다.
성민의 손이 창고 문 앞을 스치자 기다렸다는 듯 자석이 달라붙었다. 자석은 그의 손을 빠져나가 문에 흡착되다시피 했다. 당겨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두 손을 써서 가까스로 떼어내었다. 자석은 알고 있던 것보다 무겁고 컸다. 지금까지 그걸 몰랐다는 게 성민 본인이 유이하게 인정한 이상한 생각이었다.
아마 많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것들은 숨겨져 있고 그래서 잊히고 그러다 결국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모르게 된다. 놀랍게도 처음엔 드러나 있었던 것들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지 못한 것일까, 보지 않은 것일까. 나조차 숨기는 데 동참했던 걸까? 그러고선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배제해 버린 가능성을 생각했다. 붙을만한 수많은. 붙을 수 있었던 수많은. 혹은 붙을 뻔했던 수많은.
성민은 자석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말하자면 자성이 있는 사람. 자성은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