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개척자라고 부르자고 했다.
“수희야, 집을 찾으러 떠나는 거야. 이런 번쩍한 도시 숲에서 머물 곳을 떠나 돌아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니. 말하자면 그런 거지. 신대륙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개척자. 마치 처음 미국을 발견했던 역사 속 그 사람과 같은. 이름이 뭐더라···. 그래, 맞아. 콜럼버스.”
내민 손을 홀린 듯이 잡았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희안하게 언제부터 이 여정이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나날을 헤매며 대륙을 누비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수렵 채집인 같은 우리가 콜럼버스와 같다는 화이의 천진한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붙잡는 따스한 손의 온기 때문이었을까. 몸은 고되고 힘들었으나 여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여비가 부족한 지는 꽤 되었다. 사우나나 피시방과 같은 장소를 전전하다가 폐쇄된 지하철, 아파트의 옥상, 상가의 비상계단, 공원의 정자까지 오게 되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어디든 집이 되었고 머물 장소가 되었다. 걱정되는 것은 살벌한 추위에 화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화이가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없는데, 화이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그런 불안에 몸을 뒤척일 때면 화이는 자신은 괜찮다는 듯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한쪽 다리를 올리며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그럼 자신은 화이의 손을 맞잡으며 빨리 신대륙을 찾았으면, 따뜻한 집을 지었으면 하는 소박한 소원을 달에 빌었다. 서늘한 바닥에 지친 몸을 누이며, 내일 뭐 먹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미리 파악해 놓은 무료 급식소를 언제 갈 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편으로는 서로 먹고 싶은 메뉴를 나열하기도 했다. 떡볶이, 마라탕, 치킨···. 그런 말을 한 다음 화이가 나에게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 우리 정착하자. 단칸방이든 반지하든. 어디서든 정착하자.”
우리는 저녁 늦게 잠이 들어 이른 아침이면 움직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인적이 드문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저녁 내내 차가워진 몸을 데웠다. 하루는 화이가 어디서 주워온 지도 모를 버려진 텐트를 들고 와서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멋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화이는 눈부신 웃음을 지으며 나의 양어깨를 단단히 짚고 자신의 이마를 나의 이마에 비비적거리곤 했다. 나와 화이는 설명서도 없는 생소한 텐트를 펼치고 이리저리 만지며 집을 짓기 시작했다.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이 넓게 퍼져있는 공원에 목 좋은 터를 잡고 스테인리스 지지대를 구부리며 진지하게 집을 지었다. 텐트는 탄탄한 듯 허술했고 낡았으나 바람을 막아줄 정도의 공간은 마련해 주었다. 화이와 나는 손깍지를 끼고 허공을 바라보며 몸을 폈다.
“화이.”
“응?”
“좋다.”
화이는 쭉 폈던 몸을 옆으로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러게. 또 하루의 긴긴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모험은 거칠었다. 쉬운 일도 없었고 어디를 가나 화이와 나는 배척당했다. 하루빨리 신대륙을 찾아야 해. 빛바랜 사명을 안고 우리는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일 년의 마지막 날. 화이와 나는 지하철 도착 시간에 맞추어 무단으로 개찰구를 넘었다. 그리고 달려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닫히는 개폐문을 보며 숨을 고르고 웃었다. 목적지는 명동이었다. 명동에 도착하여 사람 무리에 뒤섞이면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5, 4, 3, 2, 1!”
새해 복 많이 받아, 화이. 화이는 잡은 손을 아플 정도로 세게 붙잡았다. 새해가 되도록 신대륙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화이와 나는 이제부턴 정착할 곳을 떠나 방황할 것이다. 두렵진 않았다. 이젠 내가 화이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화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줄 것이니. 무섭진 않았다. 집으로 가자. 집을 찾아 떠나보자. 화이. 이 넓은 대륙에 우리가 누울 곳 하나는 있겠지.
화이와 수희는 그렇게 인파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