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만에 나의 동네로 간다. 나의 동네로 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교통카드와 이어폰, 그리고 동네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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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라 하면 무릇 우리 집 주변 반경의 상권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우리 동네를 ‘나의 동네’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 동네는 우리 집이 있는 동네이고 나의 동네는 나의 추억이 담긴 동네이다. 어떤 차이냐고 의문을 표하지 말라. 아주 대단한 차이가 있으니!
가령 나의 동네에는 이런 고물가 시대에 시간당 천 오백 원밖에 받지 않는 아늑한 만화 카페가 있다. 깊숙한 골목 너머 적어도 20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주상복합 빌라 2층에 있는 그 만화 카페는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자주 가던 단골 가게이다. 그곳에서 초콜릿 라떼를 시키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볕을 쬐며 여유롭게 읽는 만화책은 정말이지 최고다. 반면 우리 동네에 있는 만화 카페는 어딜 가나 보이는 프랜차이즈 만화방인지라 그보다 1.5배 더 되는 비용을 내고 굴에 들어가 눈이 시릴 때까지 집중해서 읽어야 겨우 뽕을 뽑을 수 있다.
만화 카페 이외에도 나의 동네에는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주민 맛집이 있다. 우선 맛집 첫 번째는 전에 살던 주공 앞 상가 2층에 자리 잡은 짜장면집인데 면이 초록색이다. 독특한 비주얼에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그 아래 상가 1층에 있는 두 번쨰 맛집, 닭강정 집에서 포장해서 먹는 닭강정 또한 별미이다. 그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손맛이란, 말 그대로 그 동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전유물과 같은 것이다. 나의 동네에 자주 들르지 못하게 된 지금도 떠올리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그러나 가끔 아직도 나의 동네에서 거주하는 동네 친구에게 비보가 들어오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곤 한다.
“승예야. 상가에 있던 슈퍼 없어지고 편의점 들어왔다?”
“슈퍼? 그 슈퍼가 없어졌단 말이야? 아저씨도?”
“아저씨···는 뭐 하고 계실련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없어졌어, 아, 그리고 문구점도.”
“뭐?! 그 문구점 없어지면 요즘 애들은 어디에서 학용품을 사는 건데.”
“아직 초등학교 앞에 호식이 있으니까 거기 가겠지, 뭐.”
“거기에서 맨날 삼천 원짜리 틴캐쉬 샀었는데. 요즘 애들은 틴캐쉬 모르나?”
“추억이다. 틴캐쉬.”
대화의 끝은 언제나 그땐 그랬지로 끝맺는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가 없어지고 대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만. 동네의 익숙한 가게가 허물어지고 다른 가게로 바뀌는 모습은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친구도 이제는 동네를 자주 돌아다니지 않아서 나와 같이 노는 날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함께 폐업한 가게를 조우하기라도 하면 힘껏 아쉬워하곤 한다. 여기 없어졌어? 라고 화들짝 놀라며 짠 듯이 탄식을 내뱉고 둘의 추억을 공유하며 그땐 그랬지 하고 웃는 모습이 생경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아쉬움은 나의 동네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동네에선 가게가 없어져도 심드렁할 뿐이니 어쩌면 나는 마음만은 아직도 나의 동네에서 살고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승예, 여기!”
친구의 집으로 서둘러 향하는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너 왜 여기 나와 있냐.”
“그냥. 마중나올 겸.”
나는 친구 옆 빈 그네에 앉았다. 그리고 무릎에 서서히 반동을 주며 그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타고 있는 그네를 앞뒤로 살짝 왔다 갔다만 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그러한 친구의 모습을 힐긋 바라보다 멍하니 하늘을 보며 그네의 속력을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
“있잖아.”
“응.”
“우리 집 이제 이사간대.”
“뭐어?”
하늘 높이 올라감에 따라 거세지는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서 잘못 들은건가 싶었던 승예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집! 이사간다고!”
“왜애!”
“우리 동네 재개발 된대! 주변 사람들 다 이사 준비하고 난리도 아니다.”
“뭐라고?”
나는 급히 발로 브레이크를 걸며 그네의 속도를 낮추었다.
“그럼 우리 집도?”
“없어지겠지?”
“와, 진짜 너무하네.”
갑작스러운 소식은 마음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상가에 있던 가게들이 다 문을 닫는다 싶었더니 우리 집도 폐업한단다. 그리운 나의 동네가 우리 집과 함께 이제는 먼 추억 한 켠으로 쓸쓸히 물러서고 있었다.
“아쉽네. 너 이사가면 이제 이 동네도 거의 안 오겠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쯤되면 여기도 우리가 아는 동네가 아니게 될 거야.”
“그러겠네. 아쉽다.”
아쉽다. 우리 집이 아니게 되었지만 마음만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승예가 다시 힘차게 그네를 움직였다. 우렁찬 목청으로 소리 지르는 것은 덤이었다.
“너무하다 진짜!”
승예의 말에 웃음이 터진 친구가 내는 옅은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우리 집을 꼭 그렇게 뺐어야만 했냐!”
“우리 집도!”
허공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그네의 위에 일어난 승예가 무릎을 굽혔다 피며 더욱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잘가라, 우리 집.”
잘가라 나의 동네야.
안녕 나의 추억아.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