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처럼 갑작스레 집이 없어져서 동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동거인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어느 쾌청한 가을날이었다. 그러니까 현 동거인이자 십년지기 친구인 근하는 최근 연락으로부터 다섯 달 만에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늘 연락이 드문하다가 갑작스럽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뭐해? 라는 두 글자는 생존 신고였다. 나는 잘 살아있다는 암묵적인 단어이자 이제 볼 때가 됐지? 하는 약속이 담긴 문장.
다섯 달은 조금 심했지라는 감상이 들어 실없게 웃고는 보고 싶다는 답장을 써내려갔다. 그러자 근하는 기다렸다는 듯 조금의 공백도 없이 내일 시간 돼? 라고 말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오후에는 시간이 된다는 긍정적 의사를 내비치자 그럼 7시에 항상 만나던 카페에서 보자는 접선 요청을 받았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카페에 도착한 것은 7시 10분경이었다. 10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보낸 문자에는 읽었다는 표시가 없었다. 같이 늦나보다 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근하를 본 것은 메뉴를 주문한 이후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근하는 항상 마시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앞에 두고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핸드폰도 안 보고 뭘 하나 싶어서 말도 안 걸고 그녀를 응시하던 나는 결국 음료가 나오고서야 자리로 향했다. 책상에 컵을 올려놓고 맞은 편에 앉자 근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다섯 달 전과 비교했을 때보다 수척해지고 다크써클이 짙어져 있었다.
“늦어서 미안.”
“아니야.”
정적이 둘 사이를 감쌌다. 나는 따뜻한 머그잔에 손을 올려놓고 어색한 분위기에 잔을 만지작 거리다가 목을 조금 축였다.
“무슨 일 있어?”
근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너는 집에 모기가 있으면 어떻게 해?”
“모기? 모기야 그냥 잡지. 아니면 에프킬라 뿌리거나.”
그렇구나. 근하는 한 입도 대지 않은 프라푸치노를 빨대로 휘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모기가 뭘 어쨌는데.”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모기 때문에?”
“응. 분명 불을 끄면 귀에서 윙윙대는데 잡으려고 불을 켜면 안 보여. 에프킬라를 뿌려도 모기향을 피워도, 모기가 싫어하는 주파수를 틀고 잠에 들려고 해도 똑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자꾸 불만 끄면 그 소리가 들리니까 잠을 못 자겠어. 벌써 석 달 째야.”
근하와의 연락은 다섯 달 전. 그녀의 새로운 자취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 이후로 끊겨있었다. 초보 자취생인 근하는 그동안 벌레와의 사투를 겪고 있었나 보다. 걱정과는 달리 가벼운 내용의 고민에 안도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조언을 건넸다.
“세스코 불러. 네가 못 잡겠으면 불러야지.”
“불렀어.”
“진짜?”
“근데 아무것도 없대. 깨끗하대.”
“그럼 된 거 아니야?”
어이가 없다는 뉘앙스를 진득하게 풍긴 나는 답답함에 아직 식지도 않은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슬슬 모기 이야기가 지겨워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모기 이야기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모기 수명이 한 달에서 두 달이래.”
“그런데.”
“그런데 세 달째 모기 소리가 들린다고. 모기가 없는데.”
“모기 귀신인가 보지.”
“나 지금 진지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근하를 응시했다. 그깟 모기 하나로 이렇게 열을 내는 근하가 이해되지도 않고 답답했다.
“정 그렇게 불안하면 내가 모기 잡아줄게. 그깟 모기 잡아주면 되잖아.”
“정말? 그럼 모기 잡을 때까지 우리 집에 있어줄 수 있어?”
모기 하나를 잡아달라면서 선뜻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근하의 모습에 나는 묘한 이상을 감지했다. 어쩌면 근하가 내가 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진심이야?”
“응. 우리 집에서 모기 잡아줘. 대신 잡을 때까지 나가면 안 돼. 부탁이야.”
그렇게 나는 근하와 동거를 시작했다. 하루치 짐을 싸들고 근하의 집에 가며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진짜? 모기 잡을 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고? 진심은 아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