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이 이사를 간 것은 중3 겨울방학 때였다. 듣기로는 엄마와 아빠가 재결합한다 했다. 재원은 부모님의 재혼이라는 좋은 소식을 들고 왔음에도 시원해 보이지 않았다.
“좋지 않아?”
“응, 뭐 그렇게 좋지도 안 좋지도 않아.”
“그럼, 뭐가 문젠데.”
“이사 간대. 정선으로. 강원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해 고르고 고르다가 한 마디를 겨우 얹었다. 연락할게. 재원은 안심한 듯 살짝 웃음을 걸치고 있었다. 오답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그때의 대답이 사실은 오답이 아니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간혹 그날 재원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져야 했나 생각한다. 혹은 "가지마."라던가. 아니면 "힘들지 않겠어?"라고 말해야 됐지 않는가 따져본다.
재원은 정선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는 그 후로도 계속 연락했다. 그때의 답에 부흥하듯 지독하게 연락했다. 매일 읽은 책을 공유했고, 재원이 읽은 책을 먼저 나에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 가끔, 아주 가끔 재원은 정선에서 서울로 놀러 왔다. 그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나와만 약속을 잡았다. 다른 친구들은 없냐는 농담을 던지면 재원은 난감한 얼굴을 하곤 했다. 농담이길 바랬으나, 재원에게 남은 과거는 이제 저가 전부였다. 재원의 부모님이 미워졌다. 재원이 정선에 가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화가 났다.
그와 서울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에는 수개월, 아니 몇 년간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나는 여지껏 도시에서 살아온 재원이 정선에서는 잘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가 다시 서울에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곳에서 재원은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재원은 계속 정선에서 산다고 했다. 그곳에서 가업을 잇기로 했다고 했다. 재원이 연고도 없는 외지에서 일만 하며 젊은 날을 허비하는 것 아닐지 생각하여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애초에 자신은 재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그저 재원이 재원의 인생을 잘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 끝에 오늘 나는 정선에 왔고, 그가 이곳에 있다. 재원이 뒤를 돌아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본다. 조금은 놀란 듯이 나를 보다가 문으로 다가온다. 잠금장치를 풀었다.
“어서 와.”
재원은 여전히 재원이었다. 재원의 가족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 다음, 그는 나를 빈방으로 안내했다. 모텔 일을 겸하고 있는 식당에는 빈방이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낡은 방에 조금은 긴장하며 짐을 두고 재원의 방으로 향했다. 재원은 건물에서 가장 작은 방을 사용했다. 내가 머무를 방보다 좁았다. 그러나 나는 그 방에 홀딱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방은, 그러니까 재원 그 자체였다. 재원이 좁아터진 방을 반짝이는 눈으로 소개한다. 그가 좋아하는 색깔의 침구,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방에서,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산 컴퓨터를 자랑한다. 책상이 없어 스툴에 먹을 것을 늘여놓고 술을 마시며 추억을 회상한다. 바인더 속에 모인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나는 언제 이런 걸 모으고 있었냐, 놀리기도 하고 속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나는 인정했다. 나는 재원의 선택을 부정했지만, 재원의 선택이 옳았음을, 그제야 알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재원은 이곳에서 내가 불편할까 봐 오히려 안절부절못했지만, 나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안은 우려였고 오판이었다. 나는 재원의 인생이 나의 인생과 닮았을 것이라 오판했다. 그리고 그를 내 잣대로 평가했음을 후회했다. 가끔은 탓하기도 했다. 재원이 서울에 있었더라면 내가 덜 외롭지 않았을까. 그는 내가 보고 싶긴 한 것일까 고민했다.
책장에 책이 꽂혀있다.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만과 편견’, ‘모순’. 특별히 소개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그와 나의 시간이, 공백이, 물성으로서 이곳에 축적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잘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