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씨의 뜀박질보다 남성의 주먹질이 빨랐다. 과연 손은 발보다 빨랐나? 몇 걸음 정도 뒤로 밀려난 수호 씨가 주춤하며 턱 주변을 매만졌다. 일단 맞긴 맞았는데, 순간적으로 더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혈액이 온몸을 돌고 있다는 게 너무나 잘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감각과 별개로, 몰려든 사람들이 수호 씨를 데려가 어딘가에 앉히기 전까지 수호 씨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붙들려 벤치에 앉게 된 수호 씨는 그저 멍하니, 맞지 않는 초점을 애써 맞추려는 사람처럼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주영 씨를 필두로 사람들이 남자를 제지했다. 난데없는 아수라장이었다. 붙잡힌 남자가 갑자기 잡힌 몸에 힘을 쭉 빼더니 그 자리에 앉아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와… 뭐냐?”
마침 여자 친구와 플리마켓을 구경하려고 나왔던 휘겸 씨는 정신없는, 그러나 또 한 순간인, 그러나 또 영원 같은 지금 이 사건이 놀라웠다. 목격자의 기분이란 썩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가고, 판매자인 입주민들은 공간을 정리했다. 구경하러 온 입주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함께 공간을 수습했다.
남자는 심각한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긴, 사연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처음엔 윗집인 줄 알고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알렸지만, 윗집은 빈집이었다. 그럼 옆집일까? 아랫집일까? 두 층 위의 집일까? 남자는 누구도 특정하지 못하고 의심이 커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음 때문에, 남자는 점차 마주치는 이웃 모두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주영 씨가 남자 쪽의 통곡을 해결하는 동안 진 씨가 얼떨결에 수호 씨를 맡게 되었다. 수호 씨는 전달되고 전달되어 진 씨의 부스 옆쪽에 있던 벤치에 앉혀졌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요? 손 날아오는데.”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수호 씨의 귀를 꿰뚫은 목소리였다. 왜 이 사람이 나를 혼내고 있지, 난 왜 여기 있지. 수호 씨의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진 씨는 바닥에 흩뿌려진 수호 씨의 LP와 CD, 떨어져 흠집이 난 CD플레이어를 주웠다. 어, 진 씨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얼마간 멈췄다. 진 씨가 CD들을 줍다 불현듯 느낀 기시감을 애써 덜어내었다. 그러나 아, 하며 터져 나온 소리까지 막을 순 없었고 그건 기억 저편의 구석에서 뇌가 길어 올린 불수의적인 반응이었다.
“기억났다.”
떨어진 수호 씨의 물건을 줍느라 쭈그려 앉아 있던 진 씨가 고개를 홱 돌려 수호 씨와 눈을 맞췄다.
“글렌체크. 그쪽 맞죠?”
… 오늘 2월 29일이니까, 다음 2월 29일에 만날 수 있으면 그때 줘요. 네? 어디서요? 글쎄요, 아마 시드니에서? …
2월이 진작 지난 봄의 바람과 흩날리는 꽃잎들 아래, 이 두 사람이 있다. 수호 씨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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