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매물들이 들어오려나?
작년엔 형편없었다. 겉만 반지르르하게 꾸민 반지하들이 쏟아져 나오고, 몸 하나 누우면 끝나는 감옥 같은 방들도 터무니없는 가격표를 붙이고 나왔다. 소개하면서도 민망했다. 쾌적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갖추면 어찌나 각종 프리미엄이 붙던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발버둥 치고 하루하루 벌어내 겨우 계약할 수 있는 곳, 내가 내 몸뚱어리 하나 둘 수 있는 곳을 보고 나서 의욕이 떨어져 보이는 친구들. 이해가 간다. 비정상인 세상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올해는 진짜 좋은 매물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겠다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준비한 만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짜릿함 한번 주겠다고 말이다. 좋은 매물을 준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짜릿한 순간을 완성하기까지 순조로운 과정만 있는 건 아니다. 무려 3차전에 달하는 면접을 통과한 자만이 좋은 매물을 차지할 수 있다.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자 vs 마음에 드는 세입자를 들이려는 자의 정보 전인 1차전,
더 좋은 조건에서 살고 싶은 자 vs 더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은 자 2차전을 지나면
돈을 지키려는 자 vs 돈을 더 벌고 싶은 자 3차전까지 이어지는 이 면접은 전혀 만만치 않은 면접이다.
1차전의 핵심은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핵심이다. 어떻게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궁리해야 한다. 주인은 다양한 옵션을 제시한다. 옵션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최후의 보루로 금액을 조정해 준다. 서로 빠르게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다. 집도 세입자도 서로 준비가 되었기에 가능한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1차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뭔가 모르게 불안하고 찝찝하다. 이 선택이 맞은 선택인가? 더 나은 선택은 없는 것인가? 생각하는 2차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입자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플랫폼을 둘러보기도 하고, 주위 친구들에게 계속 물어본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맞아? 집주인은 초조해진다. 조금 더 강력한 장치가 필요해진 주인은 서둘러 10% 정도의 계약금과 계약서를 작성할 날을 잡는다.
2차전이 마무리되면 세입자는 이제 다른 곳을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본 계약까지 진행되어 잔금을 다 치르고 나면 설레면서도 동시에 불안함도 찾아온다. 법적 권리, 책임으로 얽히는 단계가 필요해지는 이유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세입자는 이것저것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장치를 설정한다.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고 나서 보증보험까지 드는 건 필수다.
이 면접을 제삼자로서 지켜보며 참 인생과도 같았던 게, 경험이 많을수록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각 단계를 대처해나가는 자세들이 다르다. 결국 집을 구하는 것도 시간을 지나 보내면서 성숙해지는 걸까.
올해는 신기하게도 괜찮은 매물들이 지원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좁은 공간도 기가 막힌 배치로 몇 평은 더 커 보이는 곳도 여럿 있었다. 면적도 가격도 위치도 적당함을 갖춘 방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신기하게도 잊히지 않는 매물 하나가 있었다.
선릉역 바로 뒤 역세권에 위치한 이 집은 겉보기엔 평범한 빌라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부는 외부의 차갑고 삭막한 온도를 잊게 하는 따뜻한 로비의 조명색이 한번 나를 감싸고, 매물까지 올라가며 보이는 사이니지들이 친절하게 맞이하는 듯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시간이 느려지게 하는 그래도 힘들지 않고 뭔가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인 사장님께 받은 문자 안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벽돌로 마감한 현관을 거쳐 투박한 듯 새로운 영감을 주는 거실이 나를 반겨줬다. 거실 뒤로 보이는 침실은 작은 아지트 같았다. 양 벽이 여러 개의 창문을 지니고 있었다. 햇빛과 공기가 풍부하게 들어갔다 나왔다 할 것 같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이 공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방이었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에게도 환기되는 순간을 제공하는 그런 공간. 그런 하루를 선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좋은 매물이었다.
내가 잊히지 않은 것은 이 매물이었을까?
이 매물을 잡게 된 어느 한 청년과의 잊지 못할 기분 좋은 면접 과정이었을까?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묘해지는 연말, 면접 시즌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