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휴가를 얻었다. 무려 7일이나 되는 휴가. 휴식은 좋았지만 휴가 자체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예감은 했지만 이 휴가는 또다시 본 두 줄로 인해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번째라서 전보다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전보다 간단해진 절차에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될 일인가 의구심만 품을 뿐이다. 사실 애초에 누군가의 처방전을 전달받기 전부터 익숙한 강도의 아픔과 증세에 ‘그것’에 걸렸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자꾸만 오진을 하는 돌팔이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루빨리 원하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밖에 나와야 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그래서 둘째 날부터는 35만원을 포기하고 집에 있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마치 전염병 그 자체가 된 기분.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그 기묘하고 죄악감이 드는 미묘한 감정을 휘발시키기 위한 미필적 선택이었다.
휴가를 얻기 하루 전. 연속적인 예상 밖의 결과에 한 줌의 희망을 품고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이전과 비슷한 강도의 검사를 생각하고 갔는데 예상보다 고됬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3분에서 15분이 걸린다고 하던데 나는 3분 만에 부름을 받았다. 결과는 ‘그럼 그렇지’였다.
격리라고 할 수 있지만, 격리라고 하기엔 자유도가 높다. 3평 남짓한 자그마한 공간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 모두 허용되지만 나가는 것 하나만 허락되지 않는다. 격리가 적성에 안 맞는 편도 아니었다. 나는 확실히 격리 체질이었다. 다만, 이 격리를 달갑게 반기지 않았던 것은 전이나 지금이나 이것은 꼭 나의 중요한 순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3달 준비한 공연의 프로필 촬영일과 기간이 겹쳐 팜플렛에 나의 사진을 합성해야만 했다. 자연스러운 사진에 오점을 남긴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소외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일 전날에 격리를 시작해 버렸다. 기가 막힌 타이밍마다 나타나 방해하는 그것의 타이밍이 얼마나 정교한지 모를 일이다.
초반 4일 동안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더니 5일차가 되는 날 급격하게 상태가 좋아졌다. 상태가 좋아지니 불안이 찾아온다. 격리로 인해 미뤄진 일들로 인해 스케쥴은 꼬일 대로 꼬였고 3년간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한 통 오지 않았을 때는, 이런 소외감을 또다시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간만에 꿈을 꿨는데 엄청나게 생생한 꿈이었다. 꿈에서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날카로운 의심이라 괴로워서 오열하다 울다가 깨어났다. 해몽을 검색해 보니 억울해서 오열하는 꿈이 길몽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격리가 해제되면 누군가에게 이 꿈에 대해 이야기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놓지 않았더니 지금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구제 불능이다.
이른 해가 뜬다. 에어컨이 없는 한여름의 방이란 실내라도 굉장히 습하고 더워 선풍기를 튼 곳만 시원하다. 동그란 원 밖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찾아오는 불쾌한 열기는 땀샘을 촉진하고 불쾌 지수를 높인다. 문을 여는 행위조차도 하기 싫은 눅진한 기분에 침대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다. 미동 하나 없이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방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7일이 끝나면 이 방은 감옥에서 누군가의 아늑한 방이 된다. 바이러스에 절여진, 당분간은 누군가를 초대하기 꺼려질 나만의 아늑한 감옥이다.